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한국ㆍ러시아 대화 프로그램(12월 1~5일)으로 방문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사. 입구에 들어서자 좌우에 공산주의 창시자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동상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청사 출입문 앞뜰에는 소련 붕괴 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레닌 동상이 특유의 손짓으로 손님을 맞았다. 볼셰비키가 케렌스키 임시정부를 무너뜨린 1917년 10월혁명 후 레닌은 이 청사에서 소비에트 인민평의회를 소집해 “혁명은 완성되었다”고 선언했다. 사회주의 혁명의 발상지이자 제정 러시아 수도인 이곳은 한국에도 특별했다.
▦ 그리고리예프 페테르부르크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은 한국 언론인과의 만남에서 “서양에서 한국학의 중심지이자 발상지”라며 페테르부르크와 한국과의 특별한 과거사를 서두에 꺼냈다. 통역을 맡았던 아나스타샤 구리예바 국립페테르부르크 대학 동양학부 한국학과 부교수는 1897년 서양에서는 처음으로 이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이 시작됐다고 했다. 초대 강사는 ‘김병옥’이라는 조선인으로 삼강오륜 같은 책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 조선왕조실록에서 러시아와 연관된 김병옥(金秉玉)을 찾아봤다. 고종 39년(1902년) ‘러시아 주재 공사관 서기생(書記生) 김병옥의 귀국 비용 1,100원’이 전부였다. 공사관의 직위는 공사, 참서관(參書官), 서기생 순이다. 1896년 제정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고종의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을 수행한 하급 통역관으로 추정된다. 동방에 관심이 많았던 니콜라이 황제의 명에 따라 설치된 이 대학의 동양학부에서 김병옥은 민영환의 귀국 후에도 남아 한국어를 가르친 게 아닌가 싶다.
▦ 그의 러시아 제자들은 뒤에 한국어교본, 한ㆍ러 사전 등을 펴냈다. 춘향전 같은 고전 문학은 물론 신라 향가도 러시아어로 번역됐다. 이 대학이 지난 120년간 번역한 한국문학만 수 백 편이다. 졸업생은 스웨덴 스톡홀름대, 노르웨이 오슬로대 등 유럽 각지의 대학에서 한국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학 연구로 유명한 미국 워싱턴대에는 페테르부르크대에서 발간한 한국학 문집이 죄다 비치돼 있다고 한다. 페테르부르크대 한국학과의 위상을 말해준다. 이력이 잘 알려지지 않은 김병옥이 뿌린 한국학 씨앗은 실로 엄청났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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