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죽은 남편이 130여개 보관 치매로 사망 탓 가족들 까맣게 몰라
변심한 범인 유흥비 등 40억 탕진 경찰, 남은 금괴·돈 21억 가족에게
“생각지도 않던 금괴라니. 고맙습니다.” 이달 초 경찰이 찾아온다고 했을 때만 해도 김모(84ㆍ여)씨는 넉 달 전 자신의 건물에 난 화재를 조사하려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경찰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2003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숨겨놨던 금괴를 훔쳐간 사람들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올해 8월 15일 김씨가 딸 집으로 이사하면서 세를 놓은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에 불이 났다. 화재로 손상된 건물 내부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인부 조모(38)씨는 붙박이장을 뜯어내다 장 아래 작은 공간에서 라면상자보다 조금 작은 나무궤짝을 발견했다. 궤짝 안에는 1980년대 발행된 신문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싼 금괴 130여개가 나왔다. 시가는 65억원에 달했다. 조씨와 동료 인부 2명은 금괴 한 개씩만 챙기고 나머지는 제자리에 넣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한 조씨는 그날 오후 동거녀 김모(40)씨와 나머지 금괴를 모두 훔쳐 달아났다.
조씨는 훔친 금괴 일부를 금은방 세 곳에 나눠 팔아 지인의 사업에 수십억원을 투자하면서 재력가 행세를 했다. 이 돈으로 고급 외제 승용차를 샀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등 유흥비로 썼다. 조씨는 3개월여 만에 금괴 90여개(46억원 상당)를 팔아 치운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은 조씨가 동거녀를 배신하면서 들통났다. 새 여자친구가 생긴 조씨는 김씨 몰래 남은 돈과 금괴를 들고 도망쳤다. 김씨는 심부름센터에 조씨를 찾아달라고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이들의 범행을 알게 된 센터 직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조씨를 특수절도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인부 2명과 조씨의 동거녀 김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금은방 주인 3명은 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조씨가 보관하던 남은 금괴 40개(19억원 상당)와 현금 2억2,500만원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집주인 김씨의 남편은 생전에 주식투자 등으로 모은 재산을 금괴로 바꿔 보관해왔다. 하지만 남편은 2003년 사망하기 7~8년 전부터 치매를 앓아 숨겨둔 금괴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집주인 김씨와 자녀 8남매 중 금괴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며 “조씨를 잡지 못했다면 완전범죄가 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남은 금괴와 현금을 김씨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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