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눈물바다 연출하며 흥행 돌풍
중장년층보다 젊은층 관객 압도적
개봉 13일 만에 30만명 관람 주목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에서 이런 문구를 봤어요.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두 분의 삶이 그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첫 영화인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연일 극장가에서 눈물바다를 연출하고 있는데도 진모영(44) 감독은 담담했다. 영화와 관련해 첫째 소망으로 “(언론이나 관객에게) 제발 할머니를 찾아가지 마시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9년 296만 관객을 동원한 다큐멘터리 흥행작 ‘워낭소리’의 주인공들이 사생활 침해로 고통 받았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님아…’는 1만명 모으기도 힘든 다큐멘터리로선 이례적으로 13일 만에 30만 관객을 모았다. 대기업 배급사의 힘이 한몫 하긴 했지만 흥행 속도가 심상찮다. 80년 가까이 무구한 사랑을 나눈 노부부에 감동한 이들이 새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늙은 부모를 둔 40, 50대가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20대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한 번은 궁금해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관객을 잡아 물어봤어요. 지금 20대는 훨씬 계산적인 사랑을 하는데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건 영화 속 노부부 같은 완전한 사랑이고 그것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하더군요.”
독립 프로듀서 출신으로 주로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과 관리를 맡았던 진 감독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성규 감독의 유작 ‘시바, 인생을 던져’ 제작에 참여하며 영화를 시작했다. 데뷔작 ‘님아…’는 SBS와 KBS에 소개된 노부부의 이야기를 뒤늦게 접하고 나서 연출을 결심한 작품이다.
“지금은 재혼해서 살고 있지만 이혼의 상처가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운명처럼 만났다고 생각해요. 제게 질문이 되고 해답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 같았어요. 부부간의 사랑이 뭔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부가 주는 메시지가 엄청나게 강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노부부의 큰딸과 면접 아닌 면접을 보고 승낙을 받아낸 진 감독은 1년 3개월간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연출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커플룩’ 한복을 입는 것도, 할아버지의 생일에 큰딸과 큰아들이 싸우는 장면도 연출자의 뜻과 무관하게 펼쳐진 상황이다. “말다툼하는 장면은 동의를 구한 뒤 넣은 겁니다. 예상보다 시원스럽게 괜찮다고 하셨어요. 한 분도 창피해하지 않으셨죠. 제가 놀랐던 건 노부부의 금슬처럼 6남매 모두 하나같이 부부 사이가 매우 좋다는 겁니다.”
청력이 떨어지는 것 빼곤 별 문제가 없던 할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자 진 감독은 위기감을 느꼈다. 촬영을 중단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준다면 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진 감독은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이 두 분의 사랑을 더 위대하게 표현해준 것 같다”고 했다.
노부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진 감독의 얼굴이 밝아졌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땐 몰래 뱀을 들고 장난을 할 만큼 짓궂어서 할머니가 혼절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는 이야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신을 아들처럼 여겨 ‘일곱째’라고 불렀다는 사실, 편집실에서 촬영 영상을 몇 차례나 되돌려 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
진모영 감독은 스스로를 ‘워낭소리 키드’라고 했다. ‘워낭소리’가 열어준 세상에서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수 있는 용기와 꿈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현대 한국인의 기록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현재 고성 앞바다에서 재래식 잠수부 ‘머구리’로 살고 있는 탈북인의 삶을 그린 ‘이방인’을 촬영 중이다.
“우리 영화가 잘 돼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면 ‘님아 키드’가 생길 수 있겠죠. 그러면 저희에겐 영광입니다. 다큐멘터리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더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요한 장치이니까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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