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20, 30대 여성들로 채워지는 뮤지컬 대극장 객석이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으로 가득 찼다. 고 김광석의 음악에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가 더해지자 관객은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듯 묘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서울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그날들’은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라이선스 작품이 대부분인 한국 뮤지컬계에 몇 안 되는 창작 뮤지컬인데다 모든 넘버를 김광석의 음악으로 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기도 하다. 지난해 4월 초연 당시 창작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14만명을 동원했고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올해의 창작 뮤지컬상’ ‘연출상’ ‘극본상’ 등 8관왕에 올랐다. 그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 받은 작품이다.
극장 나들이에 인색한 4050 세대의 발길을 잡아 끈 원동력은 역시 김광석의 음악이다.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먼지가 되어' 등 4060세대가 젊은 시절 통과의례처럼 들었던 명곡들이 160분 가량 무대를 수놓는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맞춰 과감히 편곡한 김광석의 음악이 12인조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와 맞물려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김광석의 음악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다양한 연령의 관객을 2년 연속 붙들고 있는 원동력은 서사다. 극은 김광석의 음악으로 ‘추억 팔이’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추리서사를 입힌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장유정 연출은 “김광석 노래는 김광석이 제일 잘 부른다는 자명한 사실, ‘이쯤에서 이 노래가 나오겠지’라는 예상가능성 등 주크박스 뮤지컬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막에서 질문을 던지고 2막에서 답을 주는 추리서사극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날들’은 20년의 극중 시간을 끊임없이 오가며 닮은 듯 다른 두 개의 플롯(이야기)을 동시에 전개한다. 2012년 한ㆍ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의 딸(영애)과 수행경호원이 사라진다. 경호부장 정학은 20년 전 한ㆍ중 수교를 앞두고 자신의 동기이자 파트너였던 무영이 한 여인과 함께 사라졌던 사건을 회상한다. 극은 무영이 사라졌던 20년 전과 영애를 찾는 현재의 이야기를 숨쉴 틈 없는 빠른 전개로 끌고 간다.
청와대 경호원이 주인공인만큼 시각적 볼거리도 풍성하다. 올해 ‘그날들’은 경호원의 절도 있는 모습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새로운 안무팀을 투입해 검도, 유도 등 강도 높은 액션 장면을 추가했다. 또 철조망을 무대에 설치해 경호원들의 레펠 훈련 장면을 재현했고 이동벽을 통해 실외와 실내를 순식간에 분할했다. 이 밖에도 장면의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한 오브제로 버스정류장, 벤치 등이 새롭게 무대 위에 올려졌다.
배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특히 안경 하나로 순식간에 20년의 세월을 오가는 정학(유준상ㆍ이건명ㆍ최재웅ㆍ강태을)의 모습은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고 상구(박정표ㆍ정순원), 대식(최지호ㆍ김산호), 하나(송상은) 역은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음달 18일까지 공연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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