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의원·관리실서 아줌마 동원 파출소 코앞에서도 호객
단속 전무, 피부과 의사 "경쟁 탓 어쩔 수 없어"
8일 낮 서울 중구 명동길. 인파들이 바삐 움직이는 거리 한 편에 4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 한 명이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보라색 패딩 점퍼에 감색 바지, 화려한 귀걸이와 짙은 화장을 한 이 여성은 서너 명씩 무리 지은 행인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혼자 걸어오는 20대 여성을 발견한 그녀는 반색을 하며 다가섰다. “언니, 피부 상담 한 번 받아봐. 한 시간이면 돼.” 중년 여성은 당황해 손사래 치는 젊은 여성의 손목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도를 아십니까, 그런 거 아니라니까 글쎄.”
명동 한 복판에서 피부과의원, 피부관리실의 호객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20대 여성 대부분이 호객 피해를 호소하고 있지만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장이 가까워 점심 식사를 하러 자주 명동을 찾는다는 허윤희(28ㆍ여)씨는 “혼자 다니다 보면 아줌마 호객꾼들이 너무 많이 접근해 무조건 동료들과 함께 온다”고 말했다. 김세미(27ㆍ여)씨는 “명동에서 혼자 쇼핑하는 걸 좋아했지만 호객꾼 탓에 포기한 지 꽤 된다”며 “한 친구는 한 달 전 아줌마 호객꾼과 말다툼한 이후 명동이라면 학을 뗀다”고 하소연했다.
현행법상 호객행위는 경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불법행위이며, 단속 대상이다. 적발 시 1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구매자의 의사에 반해 물품이나 서비스를 사도록 강요하는 모든 행위가 호객에 속한다. 판매를 위해 행인의 신체 일부를 잡아 끌거나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아줌마 호객꾼’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극성을 부리던 화장품, 휴대폰 호객행위는 전단을 나눠주거나 호객꾼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어 경찰이 단속할 수 있었지만 40~50대 아줌마 호객꾼들은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광고전단도 들고 다니지 않고, 옷차림도 평범하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호객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그만”이라며 “현장을 덮치지 않는 이상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객꾼들은 파출소에서 불과 20~30m 떨어진 곳에서도 버젓이 손님을 잡아 끌고 있다. 명동에서 만난 한 호객꾼은 “단속 대상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며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호객행위가 극성을 부리는 것은 최근 명동 일대 피부과와 피부관리실이 늘면서 현재 100여개 업소가 환자 유치를 위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한 의사는 기자에게 “개업할 때부터 호객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보니 나 말고 대부분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면서 “주변에 피부과가 많아 생존을 위해 (호객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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