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요직 두루 거치고 은퇴...퇴직 후 강연 요청·고위직 제안 고사
조리에 관심 많아 육수도 직접 개발
“청장님, 여기 굴국밥 세 그릇 주세요.”
“저, 청장 아닙니다. ‘국밥집 사장’이라 불러주시면 더 맛있게 내 오겠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아차산 등산로 어귀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어울림’ 국밥집. 30평 남짓한 가게는 평소 손님들에다 이날 특별히 주인이 무료 초대한 인근 홀몸노인 30여명까지 자리를 함께 해 하루 종일 떠들썩했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국밥집들도 내가 직접 고아 낸 돼지머리국밥 맛엔 (비교도) 안 된다. 곧 4대문 안에 진출할 맛”이라며 큰소리를 치는 주인은 전북지방경찰청장을 지낸 김철주(59)씨. 그는 서울청 공보관, 경찰청 경비국장, 인천청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한 뒤 2009년 전북청장을 끝으로 은퇴한 전직 고위직 경찰이자 행정학 박사다. 간부후보생(28기) 출신으로 1980년 경위 임관한 뒤 불과 6년 뒤인 86년 경정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한 기록 보유자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았던 서울역 파출소와 가장 한적한 울릉경찰서에서 모두 근무한 이례적인 전력도 갖고 있다.
적지 않은 연금, 현역 경찰인 부인과 딸, 대기업 해외사업부 직원인 아들 등 은퇴 후에도 남부럽지 않을 그가 지난 5월 이 곳에 터를 잡고 작은 국밥집을 차렸다.
“고향(전남 여수)에서 갓 올라온 딱딱한 굴 껍질을 직접 다듬고 뜨거운 물에 돼지머리를 삶아내느라 손이 많이 거칠어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니 외려 얼굴 피부는 좋아졌습니다.” 특유의 육수를 개발하느라 가마솥에 삶아 낸 돼지 머리만도 수백 개는 될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반대했던 가족들도 그의 열정에 놀라 지금은 누구보다도 가게 일을 열심히 돕는다.
그는 평소 음식 맛과 조리에 관심이 많았다. 퇴직 후에는 경기 양평군에서 인생 2모작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유기농 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퇴직 후 강연 요청이나 고위직 제안도 많았지만 대부분 고사했다. 딱히 재미도 없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관피아 논란에 대해서도 “퇴직 후 위성처럼 예전 직장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세상엔 즐겁고 신나는 일이 수두룩하다”며 “권력기관에서 정점을 찍었던 사람들이 은퇴 후 서민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대한민국이 더 성숙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울림’이란 이름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조화롭게 어울리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
그는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란 말을 새기고 산다. “경찰일 때도 그랬지만, 음식을 하면서도 삶의 도처에서 고수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지금 공직에 있는 높은 분들도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가길 바랍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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