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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산타클로스는 없다?

입력
2014.12.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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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크리스마스를 만났다. 아니, 묘한 설렘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니 전구를 달아 반짝이는 대형 장식물이 줄줄이 늘어선 것을 만났다고 해야겠다. 2년에 한번씩 하필 11월이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공연예술마켓이 열린다. 어떤 물건이건 사고 팔자는 장사치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오가는데 좀 비싸게 먹혀도 얼굴 들이밀지 않으면 후회할 터. 갓 맞은 겨울에 할 수 없어 적응하는 이 추운 때 북쪽으로 향하는 걸음이 가벼울 리 만무하다. 겉 외투로는 모자라 내복에 내피까지 챙겨 넣고 목이 긴 어그부츠에 발을 밀어 넣고서야 나서 볼 엄두를 냈는데, 다행이다. 덕분에 한 시간 여, 호텔을 나서 무작정 직진하던 대로 위 찬바람과 지지 않고 반짝이던 불빛에 설레던 어린아이로 잠시 돌아가 볼 수 있었으니.

흑백 TV에서는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감기는 눈을 비비며 졸음을 참는 아이에게는 꽤나 늦은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절대 잠들 수 없다.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을 들고 마당에 들어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이번에는 만나야 한다. 그렇게 좀 지나자 엉덩이는 뜨겁고 머리 위 공기는 찬데 드디어 문소리가 들린다. ‘그가 왔다’ 반가움에 펄쩍 뛰어 반기러 나가는데 빨간 옷이 아니라 익숙한 얼굴이 마루에 들어선다. 한 손에는 통닭을, 다른 한 손에는 포장꾸러미를 들고 집 앞에서 할아버지가 전해주라 말하고 갔다며 선물을 내미는데 산타클로스를 그냥 가게 한 아빠가 이리 야속할 수 없다. 그래서 냅다 뛰어나가보니 루돌프도, 썰매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의 긴 다리에 매달린 꼬맹이가 기다린 것은 아마도 선물이 아니라 꿈이었나 보다.

내가 제자들에게 듣고 싶은 것,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의 꿈이다. 그래서 물었다. “꿈이 뭐니?” 막상 질문을 던져놓고 그들의 표정을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꾼다. “5년 혹은 10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으면 좋겠니?” 그제서야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개중에는 여전히 수업시간에 왜 엉뚱한 질문을 하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는 눈도 있다. 그렇다고 이 질문을 멈추거나 바꿀 생각은 없다. 녀석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어도 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는 주어야 하니 말이다. 할 수 없이 하나 둘씩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떼는데 “돈을 벌고 싶어요”가 절반이다. ‘좋다. 긍정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래서 답한다.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매우 건강한 생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만 더 생각해보자. 어떻게 살면서 돈을 벌 것인지.”

근사한 사내들과 상냥한 미인들을 무대에 올려 “올해 마켓 최고 공연을 보여주었다”는 칭찬까지 들은 후 2년 만에 혼자 한겨울의 몬트리올을 찾았다. 거드는 사람들과 함께인 덕에 용감하게 거리로 나섰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라별로 매일 밤 주최하는 파티에도 가보고, 서커스나 연극, 무용을 가리지 않고 보러 다니는 여유도 부려봤다. 나 역시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작품을 팔아보겠다고 장터에 뛰어든 사람이지만 ‘당장 뭐라도 건지지 않으면 하늘 무너진다’는 압박으로부터 거리를 두었기 때문일까? 어제 본 공연을 두고 여럿이 쏟아내는 품평을 거들기도 하며 가감 없이 뱉어내는 작품과 사람에 대한 볼멘소리도 가벼운 웃음으로 털어 넘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묘한 설렘과 기대로 가슴을 두근대던 어린아이들이 무덤덤한 어른이 되어 건져야 할 내용만 골라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전쟁터. 그러나 우리가 파는 것은 누군가의 꿈이었다. 많아 봐야 객석 수 몇 천이 고작이지만 사람들의 박수는 누군가의 꿈과 땀을 향한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는 양말을 걸어두지 않아도 엄마가 장난감을 사줄 것이라 기대하는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돌려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곧 크리스마스다. 캐럴송이 들려오고 나무에서는 색색의 전구가 반짝인다. 유난히 우울했던 올 한해, 잠시라도 무작정 걸으며 잊었던 어린아이를 기억에서 불러내보자.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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