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희망 프로젝트] 3부. 행복을 꿈꾸는 교육 (2) 요원한 창의적 인재 양성

변별력 확보 위해 암기 문제 많아… 독학으로 단기간 이해에 어려움

지방 출신들 고시 합격자 극소수… 로스쿨마저 사교육 의존도 높아져

국가고시 등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몰려 '고시촌'으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전문 헌책방 앞을 8일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깊은 산속 절에 들어가 세상과 담 쌓은 채 책만 보고 공부해 고시에 합격하던 것은 아주 먼 옛날 이야기입니다.”

지난해까지 5급 공무원 공개채용 시험(행정고시)을 1년간 준비하다 그만 둔 대학생 A(25)씨가 휴학계를 내고 서울 신림동에 방을 얻어 ‘고시준비생’ 생활을 시작할 당시 들었던 생각이다. 결국 개인적인 노력 외에 막강한 경제적 뒷받침이 전제돼야 원활히 고시 준비를 할 수 있는 현실을 접하고, 그는 시험을 포기했다.

학원가에서는 효율적인 고시 공부를 도와준다며 1년을 기간별로 5단계로 나눠 강의를 진행한다. A씨도 170만원짜리 ‘예비순환 과정’, 150만원짜리 ‘1순환 과정’ 등 수강료만 100만원이 넘는 2~3개월 과정의 인터넷 강의를 1년 동안 들었다. 과목당 교재비도 3만~4만원선. 여기에 한 달 방값 38만원, 독서실비 12만원, 밥값 20만~30만원 등 오로지 공부를 위해 들어가는 최소 생활비만 연 1,500만원에 달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A씨는 “요즘 시험은 내용을 쭉쭉 외워 시험지에 그대로 써야 되는데 단기간에 혼자서 그 과목들을 다 이해하고 외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학원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합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한때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불렸던 국가고시는 과거 시간과 노력의 싸움에서 돈과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기본적인 법의 원리를 묻는 문제 보다는 변별력 확보를 위해, 논란의 여지를 막기 위한 암기 형식의 문제가 출제되면서 학원가의 ‘족집게 강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A씨는 “있는 집 자식이 고시에 합격하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지만 없는 집에서는 날개 있는 새가 되기도 어렵다”며 씁쓸해 했다.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시험도 행정고시와 사정이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합격자를 가려내야 하기 때문에 시험 출제가 ‘어떻게 수험생을 떨어뜨릴 것인가’에 주안점을 둘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세세한 부분까지 달달 외워야 하는 암기형으로 바뀐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를 내려다 보니 암기력을 묻는 문제를 낼 수밖에 없게 됐다”며 “헌법재판소 판례를 요약한 학원 교재를 달달 외우는 것이 사법시험을 위한 공부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결국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이나 학원에서 문제풀이 요령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고시에 합격하면서 고시를 통해 오히려 학벌 구조가 강화된다는 분석이다. 2012년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고위공무원단 및 행정고시 합격자 출신 대학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2011년 3년간 행정고시(5급 행정직) 합격자 770명 중 지방소재 대학 출신은 47명(6.1%)에 불과하다. 합격자 10명 중 7명꼴인 533명(69.2%)이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출신이었다.

법무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0~2014년 5년 동안의 사법시험 합격자 2,537명 가운데 1,372명(54,1%) 역시 이들 3개 대학 출신이었다. 지난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발간한 ‘로스쿨 도입 5년 점검보고서’에 따르면 2002~2011년 사법시험 합격자 9,522명 중 비수도권 소재 대학 출신은 42개교의 903명(9.5%)에 불과했다. 10년간 5명 이상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한 지방대는 단 4곳 뿐이었다. 김동훈 국민대 교수(법학)는 “점수에 의해 만들어진 대학 서열구조와 주어진 질문에 정형화된 대답을 잘 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고시제도는 동일선상에 있다”고 지적했다. 암기 위주의 고시 제도는 후진적인 인재 선발방식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2009년 도입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은 기존 학벌구조를 조금은 완화시켰지만 고비용이 드는 점 때문에 여전히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2009~2013년 전체 로스쿨 진학자 1만393명 중 1,436명(13.8%)이 지방소재 68개 대학 출신이었고, 5명 이상의 졸업생을 로스쿨에 진학시킨 대학도 13개교로 사법시험체제보다는 늘었다. 하지만 연간 1,000만~2,000만원에 달하는 로스쿨 등록금과 법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하는 데 드는 사교육비는 웬만한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서울 소재 로스쿨에 재학중인 C(24)씨는 “학기 당 100만원의 장학금을 받지만 부모님의 적금을 깨고 생활비를 줄여야 할 정도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얼른 졸업하는 게 최고의 효도”라고 말했다. 김제완 고려대 교수(법학)는 “로스쿨의 정원을 과도하게 줄인 것이 등록금이 올라간 원인”이라며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법률가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하려면 로스쿨 정원과 함께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쿨과 마찬가지로 대입 단계에서의 과도한 경쟁을 해소하고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목적으로 도입된 의ㆍ치의학 전문대학원도 고액의 등록금과 진학을 위한 높은 사교육 의존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삼수를 통해서도 목표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D(24)씨는 현재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다. D씨는 “다행히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라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험 준비를 할 수 있지만 주변에는 돈을 벌면서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해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수도권 소재 약학대학에 편입한 E(24)씨는 지난해 월 50만~70만원의 수강료를 내고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대비 학원에 6개월간 다녔다. D씨는 “생물ㆍ화학 관련 전공 학생들에게는 학원에서 서류 전형 합격을 위해 따로 강의를 마련해 학점 관리를 해주기도 했다”며 “PEET는 물론 대학 강의와 면접 대비까지 학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제완 교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유일한 방법이 국가고시 등 시험이라거나, 시험을 통한 평가가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합격 기약 없는 고시공부에 3~5년씩 매달리려면 경제력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하는 현실에서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장 불리한 것이 시험제도”라고 꼬집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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