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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되고선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성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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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되고선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성을 알았다

입력
2014.12.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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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뉴욕시 등에서의 백인경관에 의한 흑인 치사(致死) 및 관련 대배심 불기소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6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불더에서 수백명이 도로에 드러 누워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뉴욕시 등에서의 백인경관에 의한 흑인 치사(致死) 및 관련 대배심 불기소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6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불더에서 수백명이 도로에 드러 누워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백인 경찰은 과연 인종주의와 무관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일까. 최근 미국을 갈등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의문이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CCP)에서 윤리적 프로젝트(Ethics Project) 의장을 맡고 있는 레딧 허드슨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경찰관이 되고선 경찰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인종차별적인지 알았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검은 피부를 지닌 그는 전직 경찰이다. 그의 목소리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허드슨의 글을 전문 번역했다.

어렸을 때 나는 경찰들에 의해 길에서 붙잡히는 일에 익숙해졌다. 나는 세인트 루이스의 교외 이너링 지역에서 자랐다. 그곳은 경찰들이 일상적으로 아무 이유 없이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두들겨 패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경찰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싫었다.

하지만 모든 경찰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경찰이었다. 그가 나의 멘토가 되었고 경찰이 되도록 격려해 주었다. 그는 내가 경찰의 힘과 자원으로 내 소속(흑인)의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1994년에 나는 세인트 루이스 경찰서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순진한 생각을 했는지 빠르게 알게 됐다. 나는 내가 마주한 비상식적인 문화에 어안이벙벙해졌다.

모두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몇몇 경찰관들이 자신들의 경험이나 의견들을 올릴 수 있는 ‘세인트 루이스 캅토크’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했다. 어떤 때는 그 사이트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사이트 관리자가 일시적으로 사이트를 닫아야 했었다. 또한 경찰들은 일상적으로 유색 인종을 그가 범인이든 목격자든 관계 없이 폭력배(thug)라고 지칭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치안업무 방법을 변질시킨다. 경찰이라면 사람들이 당신에게 욕을 하거나 당신이 도착한 것을 보고 실망하는 것에 대해 놀라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신 직업의 일부이다. 하지만 경찰들은 수없이 많은 횟수를 젊은 흑인이나 브라운(북남미 혼혈)들을 (애먼 희생의)목표로 삼았다. 작은 도발에도 강경하게 힘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은 다른 경찰과 동행하여 출동한 적이 있다. 한 집에서 10대 소년이 마중을 나왔다. 동행한 경찰관은 그 소년을 절도 용의자로서 수사를 위해 안으로 들어가줄 것을 요구했다. 소년이 거절하자 동료는 소년의 목을 잡아 내다 꽂고는 주먹으로 패기 시작했다. 다른 경찰관이 도착해서 소년에게 일어서라고 말했다. 소년은 설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소년을 집에 박아놓고 수갑을 채웠다. 소년이 다시 한번 걸을 수 없다고 대답했을 때 경찰관은 그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서 차로 데려갔다. 알고 보니 소년은 목발을 짚고 우리를 마중 나왔으며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경찰서로 돌아와서 나는 경사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번 직권남용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모든 일을 적당히 무마시키고 나에게 일이나 하라고 말했다. 나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를 향해 총알이 날아오고 공격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번은 경사와 내가 아파트에서 누군가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누군가 침대에 거대한 정육점 칼을 들고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느 동료들처럼 “칼 내려놔”라고 소리지르면서 달려들기 보다는 우리는 거리를 유지했다. 우리는 그에게 말을 걸며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대화를 해보니 그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병원에 함께 가도록 그를 설득했다. 다른 많은 경찰들은 상황을 더 빠르게 진행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사람에게 소리치고 가까이 다가가서 협박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그것이 칼을 내려놓는 움직임이라도 탄창이 빌 때까지 총을 쏴댔을 것이다.

나는 내 직업을 좋아했고, 또 잘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나는 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저 깊은 곳부터 썩어있는 범죄행정시스템에 관여하고 있었다. 나는 양심적으로 이렇게 고의적으로 불합리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시스템에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경찰이 된지 5년 후에 난 그만두었다. 퇴직 후에 어떻게 하면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봤다. 나는 미주리의 미국 자유인권협회와 여러 기관들에서 경찰의 직권남용, 인종차별, 범죄행정학 재구성 등을 공부했다.

불행하게도 더 나은 훈련만으로는 경찰의 폭행을 감소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 나와 내 동료 경찰관들은 인종차별적으로 민감한 공권력 행사를 어떻게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았었다.

문제는 경찰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자신들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관들은 처벌받지 않음을 무기로 권리들을 침해한다. 그들은 범죄행정시스템이 각각 민간인과 경찰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안다. 설사 경찰관이 체포된다고 해도 그들은 친구들에게 심문 받을 것이며 석방될 것이다. 내 동료들은 공짜 휴가라며 웃으며 농담할 것이다. 이건 처벌이 아니다. 그리고 과도한 집행은 법정에서나 대법관들 사이에서는 허용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검찰관은 법의 집행관들과 긴밀한 사이이며 같은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 직권남용사례에 대한 특별 검찰관을 뽑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좀더 독립적이고 강력한 감독관이 필요하다. 나는 내부감찰에 대해서는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당신의 인권을 유린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큰 일이다. 퍼거슨 데모에서 사람들은 “모든 망할 시스템은 유죄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번역=이상언 인턴기자(동국대 국제통상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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