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와 경쟁" 꾸며낸 임원 구속, 도주 중에도 사기행각 8억 가로채
담배 제조업에 진출, KT&G와 경쟁하겠다는 허위 회계 보고서를 작성한 코스닥 업체 임원이 구속영장 발부 5년 만에 붙잡혔다. 회사 자금으로 중소 담배 제조업체를 인수했다는 것인데, 회사 대표의 배임 혐의를 덮으려는 거짓말이었다. 이 임원은 도주 중에도 사기 행각을 벌였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 이근수)는 2000년대 유명 남성복 브랜드에 제품을 납품하던 D사의 임원 김모(50)씨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9년 초 D사 대표 임모(59)씨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D사가 중소 담배 제조ㆍ판매업체인 H사의 지분 절반 가량을 120여억원에 사들였다는 내용의 주요 사항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금융위원회에 제출됐으며, 김씨 등은 보고서 내용에 맞게 재무제표 등 관련 서류도 위조했다.
D사는 당시 주요 사항 보고서를 통해 ‘H사가 장기간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진 못했지만 담배 제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공시했다. 또 ‘순수 국내자본으로 회사의 지분을 구성할 경우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는 KT&G에 비해 국내 시장에서 유리한 홍보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서에 덧붙였다.
그러나 모든 일은 회사 대표 임씨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120억원을 메우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김씨는 정당한 투자로 보이기 위해 D사가 H사의 주식 절반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한 것처럼 꾸미기로 H사 대표와 합의했다. 김씨는 D사에서 실제로 H사에게 120억원을 지급한 것처럼 영수증과 ‘주식 및 경영권 양수도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다.
충북 음성군에 있는 H사는 2001년 담배 제조 독점권이 폐지되면서 민간 담배 제조ㆍ판매사로 설립됐으나 허가 요건(자본금 300억원 이상)을 채우지 못해 매출 없이 공장만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이 회사 주식 절반의 가치는 20억원도 되지 않았다. 이런 회사에 120억원을 투자했다고 주장했다가 그것마저 허위로 드러나면서 D사 전 대표 임씨는 징역 3년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D사는 2010년 2월 상장 폐지된 지 4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김씨는 2009년 말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직전 도주해 5년 만인 올해 11월 14일 경기 양평에서 검거됐다. 김씨를 붙잡은 강원 홍천경찰서는 그가 도주 중에도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전했다. 김씨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업체 ‘김종학앤컴퍼니’를 싼 값에 인수할 수 있는데 자금이 모자란다”며 피해자들에게 8억원 상당의 금품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학앤컴퍼니는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고 김종학 PD가 몸담았던 곳으로, 지금은 문을 닫았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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