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희망 프로젝트] 3부. 행복을 꿈꾸는 교육 (1) 학벌사회의 그늘 언제까지

블라인드 테스트 거쳐 뽑았다지만

알고보니 아버지가 정권실세

로스쿨도 경제력이 진입 좌우

의전원생 대부분 상류층 가정

공정경쟁 무너지며 양극화 키워

학벌이 취업부터 결혼까지 인생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공고하다. 7일 서울대 학생들이 학벌사회의 상징으로 꼽히는 서울대 정문 앞을 지나고 있다. 신상순 선입기자 ssshin@hk.co.kr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A씨는 올해 B기업에 입사했다. 대졸 초임 연봉이 4,000만원대로 업계 최고 수준인 B기업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꼽힌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고 복지 혜택도 다양해 이 회사 직원들은 이직률도 낮다. 국내 기업의 근로자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이지만 B기업은 13년으로 두 배 이상이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 선발 과정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자랑거리로 삼는다. 전공과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등 ‘스펙’을 보지 않는 대신 면접 자세, 조직적응력, 창의성, 팀워크 등을 살펴 기업의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인재를 선발한다는 것이다. A씨 역시 이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A씨가 입사한 뒤 회사 안팎에선 그의 아버지에 대한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 회사가 속한 업종을 규제하는 정부부처의 고위 관료였고, 박근혜 정부의 실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때문에 몇 년 전 경영권을 둘러싼 임원들의 내분이 불거졌던 이 회사가 A씨를 채용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당국 눈치보기’, ‘방패막이용 채용’이라는 말이 돌았다.

물론 A씨가 입사에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도 적지 않지만 앞서 이 회사의 회장과 계열사 사장의 자녀도 계열사에 각각 채용돼 근무하고 있어 ‘대를 이은 취업’에 대한 의혹은 꾸준히 제기된 논란거리였다. 이 업체는 재벌기업과 달리 특정 오너가 없는 회사로 회장 및 계열사 사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 곳이다.

이처럼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은 자녀의 학업은 물론 직업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교육을 통해 학력을 높여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심지어 취업 때도 부모의 직함에 따라 우대 받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 지배구조 문제로 홍역을 겪은 한 기업의 관계자는 “신입사원에게 업무를 많이 시켰더니 얼마 뒤 본사 고위층으로부터 ‘일 좀 살살 시키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알고 보니 신입사원의 친인척이 정계에서 한 자리 하는 양반이더라”며 허탈해했다.

다양한 전공의 폭넓은 식견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해 의료인ㆍ법조인으로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도 직업의 세습화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매년 2,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계층에만 기회가 한정돼 진입장벽이 더욱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방대 의대의 C교수는 “의대 교수나 의사들 사이에 ‘의전원 덕택에 자식 구제했다’는 말이 농담처럼 회자된다”며 “고교때 만해도 자연계열 최상위권이 갈 수 있는 의대는 엄두도 못냈던 자녀들을 대학 관련학과에 입학시킨 뒤 한달 100만원이 훨씬 넘는 학원에 보내 결국 의전원에 입학시킨 케이스가 많다”고 귀띔했다. C교수는 “의전원생을 뽑으면서 가정환경을 조사했더니 아버지 직업이 의사인 학생이 상당수였고 대부분 가정 환경이 윤택했다”며 “의전원이 마치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쌓으면 의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막상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이 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도 “법학적성시험(LEET)과 학부성적, 공인영어점수, 면접 등을 통해 예비 법조인을 선발하는데 자기소개서 등에 법조계 고위 인사의 자녀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 발표한 ‘사회연결망을 통한 입직(入職ㆍ취업) 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를 통해 “부모세대에 대한 사회적ㆍ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더 나은 조건의 직업은 사회연결망을 통해야 입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연결망은 주로 ‘연줄’로 대변되고, 이는 ‘학연이나 지연, 혈연처럼 특수적이고 폐쇄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이 개발원측의 설명이다. 개발원은 “한국에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연줄의 역할이 강화되는 현상이 존재한다”며 “가족, 친지, 지인의 소개와 추천이라는 사회연결망을 통해 취직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학벌상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2세에게 학벌을 세습하고, 그에 기반한 노동소득의 차이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며 “교육이 사회 양극화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학력과 취업 격차는 개인의 고용기회 불평등을 낳기도 하지만 국가 경제 전체로 봐서도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치를 방해한다는 지적이다. 김세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올해 7월 발표한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이라는 논문에서 “부모의 경제력 차이로 인해 교육에서의 공정경쟁이 훼손됐다”며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인적자원 배분을 왜곡해 효율성을 저하시키며 결국 경제성장 잠재력까지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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