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기우 전 의원이 지난 4일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로 임명되면서,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聯政) 실험’은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생색내기 식 부지사 자리 하나를 야권에 넘긴 것이 아니라, 인사와 정책 권한 일부를 넘기면서 여야 협력을 도모하는 실질적인 권력 분점의 시도다.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하에서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을 반복해 왔던 정치권에서 지방정부발(發) 연정 실험은 한국 정치문화의 일대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기폭제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 1일 한국일보사에서 가진 ‘100도씨 인터뷰’에서 남 지사의 연정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는 “권력을 안 내놓으면서 협력하자는 건 레토릭이다. 권력을 내놔야 협치가 된다”며 분권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내년부터 (여야가) 예산도 같이 짜겠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연정 실험이 대권을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더욱 굳건한 목소리로 “정치인으로서 해야할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먼저다. (현 정치판을)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협력적) 정치구조로 바꾸는 게 제 정치의 목표다”라고 단언했다. 한국 정치의 기틀을 새롭게 형성해 ‘협치의 아이콘’ 내지 ‘협치의 선구자’로 기록되고 싶다는 얘기로 들렸다. 물론 이런 흐름이 민의와 일치한다면 대권도 뒤따를 수 있다는 함의가 깔려 있는 포부인 것은 분명하다.
대권, 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개헌 논의도 협치에서 출발
선거 치러보니 공약 큰 차이 없어
교육현장 난제 많은데...
_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와의 호흡은 어떤가.
“국회도 같이 하고 지역도 같고(이 전 의원은 17대 국회 수원권선구 의원을 지냈다), 나이도 비슷하고 사람 품성도 좋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끼리 만난다. (웃음)”
_사회통합부지사가 복지 분야도 맡는데, 일단 봉합이 되긴 했으나 최근 누리과정, 무상급식 등을 두고 여야 간 인식 차가 컸다.
“그간 경기도에서는 무상급식 지원을 안 했다. 도가 친환경급식 지원을 하면 그 예산을 무상급식에 썼을 테지만, 직접 지원은 안 한 것이다. 그 기조는 이어갈 것 같다. 무상급식 문제는 (이번 연정 정책 합의에서) ‘여야 합의’라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그렇지만 교육청이 어려우니까 교육사업을 지원하려고 한다. 지난주 학교운영위원회 회장단을 만나서 들어봤는데 화장실개선, 학교시설, 학교 지킴이 등 몇 가지를 제시했다. 예산이 줄어서 하굣길은 (지킴이를) 못하고 있어 그걸 해 달라고 한다. 그 다음에 다들 좋아하신 게 ‘0교시 선택적 창의교육’이었다. ‘오전 9시 등교’에 대해 약간 반대가 많은데 맞벌이 부부가 힘들다는 거다. 내가 제안한 건 희망자에 한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체육 미술 음악 연극 등을 8시에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교사들이 부담 느끼지 않고 청년 일자리도 해소하게끔 취업 못한 전공자들을 뽑아서 할 계획이다. 일석삼조다.”
_연정에서 예산은 어떻게 편성하나.
“의회의 가장 큰 기능은 국민들이 낸 세금을 집행부가 제대로 쓰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그 기능을 못하고 있다. 95%는 기재부가 짜고 나머지 4%를 상임위 단계에서 내리고, 마지막 1% 정도를 주면 여야가 나눠 먹는 거다. 대장급들이 고기를 발라 가고 대통령 형님이라든지 쫙 나눠 가진 뒤 나머지 300명이 20~30억원씩 찢어서 지역구에 가서 ‘쪽지예산 했습니다’하면 언론에 두들겨 맞고…. 이번에도 예산 심사를 한 2주 했나? 깜깜이 상태에서 증액 이뤄지는 거 아무도 모른다. 예결위 상임위화하고 예산을 제대로 짜고 감시를 1년 내내 하자고 하지만 안되고 있다. 경기도가 그것을 해 낼 것이다. 내년부터 예산을 같이 짜겠다고 선언을 했다. 다 불러모아서 처음부터 우리랑 같이 짜자고 했다. 내년 4월부터 할 것이다. 뜻을 알고 좋은 거라고 해서 다들 찬성하고 있다. 경기도는 연정과 함께 국민 세금을 의회와 함께 짜고 감시받는다. 그래서 수박 겉 핥기 식 예산, 쪽지 예산이 없다.”
_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는 문제 없나.
“차이점들을 감정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양보하면서 창조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 교육감도 그 점에서 노련한 분이다.”
_제주는 연정이 진전되는 듯 하다가 안 되고 있다. 원희룡 지사와는 서로 얘기를 나누나.
“지난번 시도지사 협의회 때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말하더라. 국민이 바라는 정치인데 큰 틀에서 원 지사가 의욕적으로 하는 걸 도의회에서 큰 마음으로 받아 줬으면 좋겠다.”
_연정실험이 결국 대권으로 가는 의식적인 정치 행보가 아니냐는 얘기가 있다.
“도지사 출마 과정에서도 원치 않는 길로 왔지 않나. 자리는 정말 자기가 쫓아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가치를 추구하는 게 먼저다. 국민들이 해 봐라 하는 시대의 흐름이라든지 민의가 형성 될 때 자리는 가능한 것이다. 제 목표는 어떤 자리가 아니라, 제가 꿈꾸는 정치혁신을 이뤄내는 것이다.”
_당내에서는 여전히 혁신 소장파로 통하지 않나.
“혁신이란 말이 지금은 장터 쭈꾸미 신세가 되긴 했지만.(웃음) 제게 모티브를 준 게 2008년 외통위 도끼 만행 사건(한미 FTA 비준동의안 상정 논란 당시 여당이 회의장을 점거하자 야당이 도끼 등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간 사건)이다. 그때 안에서 소화기를 뿌렸는데, 밖에서 ‘불 질러!’ 하는 소리가 나자 (실제는 물을 뿌렸는데) 휘발유를 뿌리는 줄 알고 소화기를 쫙 쏜 거였다. 얼마나 코미디인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최소한 폭력 없는 국회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해서 국회 선진화법을 만든 것이다.”
_선진화법에 대해 여당에서 불만이 많다가 이번 예산안 처리에선 야당의 불만이 크다.
“1년 정도 해 보면서 균형이 되는구나 싶지 않을까. 선진화법 이후에 한 번도 폭력 사태가 없었다. 여야가 이제는 극렬하게 해선 서로 안 되겠다는 걸 알 것이다. 크게 1년 단위로 계획을 짜서 서로 주고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거다. 물론 이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극심하게 몸살을 앓고 몸이 아프니까 주사를 맞은 셈이다. 주사를 놔서 일단 열을 내리게 한 거다.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정치구조가 해법이다. 그래서 연정을 생각한 거고 연정이 가능한 정치가 되면 선진화법은 사문화될 것이다.”
_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선거제도 개편 논의와 개헌 논의 등의 정치일정이 연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간 개헌 논의는 잘못 전개됐다는 생각이다. 국민의 반응이 ‘국회가 난장판인데, 권력을 더 줘?’ 이러면 절대 개헌 못 한다. 지금이 굉장히 좋은 기회다. 폭력 국회가 일단 없어졌고 예산안이 12년 만에 법정기한에 처리됐다. 연초에 공무원연금하고 여야가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법안 다 통과시키면 ‘국회가 달라졌네’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뺏지들 주장하는 거 더 들어 볼까?’ 이런 반응 나오는 거다. 여야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가능하면 대통령께 야당 출신 장관도 여당이 추천하는 등 현 제도 안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수준의 협치를 보여주면 된다. 국회가 바뀌었으니까, 국회가 더 해 볼 수 있게 하자는 여론이 형성되면 그때 (개헌)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권력구조 개편 빨리 하자’ 이렇게 가면 국민들이 동의를 안 할 거다.”
_현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진정성의 문제다. 가령 연금법 처리의 경우 야당이 같이 총대를 메 주면 여당이 충분히 말을 해 줄 수 있다고 본다. 연금법과 개헌특위랑 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야가 협력하는 정치를 먼저 보여 주고 가는 게 훨씬 설득력 있다.”
_야당 지도부가 과도기인데 여야 협력이 가능하겠나.
“연금법은 국민적 지지가 높기 때문에 야당이 모른 체하면 집권을 포기한 셈이다. 야당 입장에서도 협력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전당대회 이후 새 지도부가 돌변해서 연금 안 된다고 극한 투쟁으로 가면 집권 못한다. 이럴 때야 말로 야당도 어느 리더십으로 갈 거냐가 중요하다. 상당한 책임과 권한을 지고 과실도 같이 따면서 수권정당으로 갈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_19대 국회 들어 여당 내 쇄신파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 당이 좀 달라질까.
“솔직히 어느 순간부터 사람에 별로 기대를 안 한다. 제 정치의 목표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독일 나치 치하에서 몇 년 동안 목숨을 바치며 독일정치 구조를 바꾸려는 몇몇의 정치인, 종교인,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정말 선지자다. 에르하르트(사회적 시장경제를 확립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가 만든 체제가 지금 독일을 탄탄하게 해 주는 틀인데, 그 사람들이 목숨 걸고 토론해서 만든 게 질서자유주의 철학이다. 그 아래에서 두 개의 구조가 생겼다. 하나가 정치체제로 한 정당이 50% 이상 득표를 못하게 하는데, 이게 연정을 가능케 한 구조다. 또 하나가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인데, 미국의 자유시장경제와는 다른 사회적 책임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 두 가지 틀로 독일이 쭉 내려왔다. 독일 총리가 전후 70년 동안 8명 밖에 안 된다. 같은 기간에 일본 총리는 64명이다. 같은 내각제라도 완전히 다르다.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통일도 이뤄낸 독일의 그 시스템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founding fathers’다. 그런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
-당 보수혁신 특위의 개혁안을 두고 당내에서 반발이 많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고민과 해법 없이는 절름발이다. 그래서 혁신위에 박수는 보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의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때는 높은 수준의 결단을 요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야 한다. 큰 차원의 구조를 바꾸는 데 기득권을 걸겠다고 할 때 의원들도 자긍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없이 출판기념회 금지 운운하면 내가 봐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_경제민주화 주장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공약으로 많이 수용됐는데, 지금은 어떻게 보나.
“추적은 안 해 봤는데 금산분리 등 굵직한 건 못했다. 금산분리 같은 게 앞으로 중요할 수 있다. 경제 민주화는 대통령 철학이기에 지금 하는 수준 정도가 박근혜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또 경제민주화가 경제 활성화를 죽이는 건 아니지만 어젠다가 충돌하면서 동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이런 저런 판단을 많이 할 것 같은데.
“이제 당 대표나 누구나 특별히 평가하지 않기로 했다. 제가 평가 받는 위치에 있으니까. 저부터 잘해야 한다. (웃음)”
_반기문 대망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놔두시라. 지사 된 후 뉴욕에서 비공개로 꽤 오래 저녁을 했다. 정치 얘기는 하나도 안했다.”
_지난 8월에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의원과 함께 친선 교류차 러시아를 방문하려다 취소됐다. 여야를 넘나들며 차세대 주자들과 교류를 쌓는 모습이다.
“여야가 무슨 차이가 있나. 선거 치뤄 보니까 공약 다 비슷하더라. 연정이 가능한 이유도 그렇게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협치할 수 있는 사람끼리 늘 소통하고 눈높이를 맞추고 가는 게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특히 외교 관계에서 더 협력을 할 생각이다. 조금 후에 이광재 전 의원 만나기로 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