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논란이다. 금융위는 금융기관의 견고한 지배구조를 달성하려면 최고경영자(CEO), 이사회, 사외이사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공통규범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모범규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반면, 금융업계는 사외이사가 중심인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CEO 후보 추천을 담당하도록 하는 등 지배구조에 대해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2의 ‘KB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에게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배구조 규범을 마련, 운영하게 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시해 시장의 평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금융위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규제의 필요성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도 금융기관은 일반기업보다 훨씬 강도 높은 지배구조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에 더해 CEO 선임까지 통제하는 것은 지나친 경영권 제약이라는 금융업계의 하소연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양측 주장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모범규준의 절차적 정당성이다. 상법은 CEO 등 이사를 주주들의 모임인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주주권은 법률상 인정된 권리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이를 제한할 경우에는 법률로써만 할 수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주주권을 제한하려면 국회에서 만든 법률에 의해야만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금융위가 모범규준이라는 행정지도를 통해 헌법상 인정된 주주권을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워 보인다. 헌법이 법률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회가 충분한 토론과 심의를 거쳐 만든 법률에 의해서라야 그에 따른 기본권 제한을 국민이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기관 지배구조와 관련한 다른 법률에도 이런 헌법상 원칙은 관철되고 있다. 상법은 이사, 감사 등의 자격 및 선임방법을 명시함과 아울러 이사 또는 대주주와 회사 사이의 거래에 각종 제한을 규정하고 있다. 개별 금융법률 역시 임원,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등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상법보다 강한 규제를 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주주가 주주권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법 및 개별 금융법률 등 국회가 만든 법률로 이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금융위는 금융규제 개혁방안을 발표하면서 행정지도 등 숨은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행정지도를 통한 규제 양산을 개선하기 위해 이미 시행된 행정지도는 법령이나 규정에 반영하거나 폐지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금번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이런 개혁방안을 거의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청이 공개적으로 천명한 정책과제를 불과 몇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것은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신뢰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국회에서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다수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모범규준에 포함된 내용의 대부분이 법안 등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금융위가 국회 논의에 앞서 모범규준을 신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면 그에 따른 집행을 하는 것이 맞는 수순이고, 금융기관 지배구조 제한에 대한 수범자의 수용성을 높이는 길이다.
KB사태의 교훈으로 금융위가 발 빠르게 모범규준을 마련해 시행하고픈 심정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더라도 외양간을 날림으로 고칠 수는 없다. 모쪼록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규제방안이 도입돼 금융기관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지속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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