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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컴퓨터 디스토피아

입력
2014.12.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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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뉴욕에서 열린 IBM 슈퍼컴인 딥블루(DeepBlue)와 체스 천재 게리 카스파로(34)의 대결은 딥블루의 승리로 끝났다. 최고 20수 이상을 내다보는 슈퍼컴이 11세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어 온 카스파로를 2승3무1패로 제압했다. 이로부터 17년 후인 2014년 6월 러시아 연구팀이 만든‘유진 구스트만’은 ‘생각하는 컴퓨터’의 기준으로 통하는 튜링 테스트를 사상 처음 통과했다. 이 테스트는 영국 전산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 1950년 기계의 사고능력 판별 기준으로 제시한 것인데, 실험 참가자 30명 중 10명이 ‘컴퓨터가 아니라 실제 13세 우크라이나 소년과 대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한다.

▦ SF소설이나 공상과학영화의 단골소재인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는 2일 BBC를 통해 “생각하는 로봇 개발을 위한 완전한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반면 인간능력의 진화에는 한계가 있어 결국 인간이 컴퓨터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전기차 ‘테슬라’ 창업자 엘런 머스크도 지난 10월 “인공지능 연구는 악마를 소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전은 어느 수준일까. 독일의 입케 박스무트 박사가 개발한, 가상현실 로봇 ‘막스(MAX)’는 참고가 될 듯하다. 독일 닉스도르프 과학박물관에서 방문객 안내역할을 하는 이 로봇은 감정표현까지 가능하다. 사람과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으며, 입력된 5만개의 단어를 통해 막힘 없이 대화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의 목표한 바를 달성하거나 실패하면 시뮬레이션 돼있는 얼굴근육 등을 사용해 표정이나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 하지만 이 로봇에게 “너 누구니?” “살아있음을 스스로 느끼니?”라고 물으면 “나는 당신이 그 질문을 진심으로 한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라고 답변을 우회한다. 인간 흉내는 내지만 자의식 내지는 정체성을 의식하는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모양이다. 인공지능은 현재 체스 대결을 넘어 대화형으로 발전하는 단계다. 과도한 상상력 때문에 지레 겁먹을 상황은 아닌 듯 하다. 먼 미래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디스토피아(dystopia)’도 결국 인간 하기 나름 아니겠나 싶다.

박진용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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