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집권 2년차 들어 묻지 마 보은성 인사 본격화 양상
일부 정계 복귀 준비 단계로 이용, 흔들리는 금융권 신뢰도 더 추락
정치권을 등에 업은 낙하산 인사, 정피아들이 금융권 요직을 파죽지세로 장악하고 있다. 관피아(관료 출신)의 앞마당이던 금융권이 세월호 참사로 무주공산이 된 틈을 타 현 정부와 여권에 연줄을 댄 인사들이 기관장을 비롯한 고위직을 줄줄이 꿰차는 양상이다. 관치(官治)금융이란 표현대신 정치(政治)금융이란 용어가 자리잡을 정도다. 최소한의 전문성이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인선이 속출하면서 가뜩이나 허약한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 및 금융공기업 임원 가운데 정피아로 분류되는 인사는 기관장 7명, 감사 12명, 이사 27명 등 최소 46명으로 조사됐다(표 참조).
기관장들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 또는 외곽 지지단체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거나,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출신이다. 특히 올해 임명(이덕훈 정연대) 또는 내정(이광구 홍성국)된 기관장 4명은 모두 금융계 동창 모임인 서강금융인회(서금회) 소속이다.
감사직은 기관장과 마찬가지로 대선 캠프 및 외곽단체 활동 인사가 대거 포함됐다. 이른바 ‘개국공신’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금융기관 서열 1위(기관장), 2위(감사) 자리를 꿰찬 셈이다. 반면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직엔 의원 보좌관, 당료, 전직 지자체장 등 여당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정피아의 득세는 현 정부 집권 2년차인 올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상임감사의 경우 1월 기술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5월 SGI서울보증, 7월 한국거래소, 9월 수출입은행, 10월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이 정치권 인사에 점령됐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정피아 임원이 계열사를 포함해 각각 5명에 이른다. ‘정피아 집결지’ 란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집권 초기 비금융 공기업에 주로 진출하던 정피아들이 이제 금융권으로 대거 몰려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금융계 터줏대감이던 관피아가 사실상 퇴각하자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보은 인사’ 적체를 풀고 있는 형국이다.
당연히 자질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학자 출신으로 금융 실무 경험이 없는 홍기택 회장은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산 매각 적기를 놓쳐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덕훈 행장이 이끄는 수출입은행은 가전기업 모뉴엘의 사기대출 사건에 내부 직원이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새누리당 총선 비례대표 후보 출신으로 우리은행 상임감사를 맡은 정수경 변호사 역시 금융권 종사 경력이 전무한 터라 자산규모 250조원의 대형 은행의 내부통제를 책임지기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정피아 인사들이 금융사 임원 경력을 정계 복귀 준비 단계 정도로 여기며 업무를 등한시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론의 주목을 받은 우리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서금회 인사의 사전 내정설이 현실화하자 “모종의 세력이 정해진 절차도, 여론의 눈치도 무시하고 막무가내식 인선을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지배구조 선진화를 강조하면서도 이런 난맥상에 마땅한 견제나 조율에 나서지 않는 금융당국 역시 비난 대상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나름의 철학과 목표가 있었던 예전의 관치에 비해 지금은 오로지 패거리 문화에 기반한 저급한 관치금융이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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