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일간 공장 점거하며 함께했지만...김승태·박필수씨는 끝내 복직 못해
겨우 복직한 박일씨 "마음 죄스럽다"
다른 해고자들이 은퇴식 마련해줘..."대법 판결 옳은지 역사가 말해줄 것"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점거파업을 했던 것도, 정리해고 소송을 계속했던 것도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79년 입사해 딱 30년 되는 해에 정리해고 통지를 받았는데, 열심히 일한 제가 왜 그렇게 나가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요.”
지난 달 쌍용차 정리해고 소송에서 승소했다면 이달 31일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할 수 있었을 김승태(59)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대법원은 김씨의 꿈을 이뤄주지 않았다. 대신 다른 해고자들이 6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성당에서 김씨의 은퇴식 ‘좋은 이별’을 열어주기로 했다. 2009년 함께 해고됐다가 올해 정년을 맞는 박일(59), 박필수(59)씨와 함께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5일 은퇴식 계획을 밝히며 “해고자 낙인을 벗지 못하고 은퇴하지만 우리는 낙담과 비탄이 아니라 긍정과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2012년 서울 정동 대한문 쌍용차 사망자 분향소를 자주 찾았던 변영주 영화감독이 사회를 맡고 쌍용차 정리해고자 심리치료를 맡아온 와락센터 정혜신 박사가 축사를 한다. 세종호텔노조 노조원 등 여러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음식을 만들어 나눌 계획이다.
김씨 등은 2009년 5월 사측의 정리해고 발표에 반발해 공장 점거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중 최연장자였다. 후배들이 “공장 안에서는 우리가 고생할 테니 밖에서 싸워달라”고 만류했지만 경찰이 진압해 올 때까지 77일을 함께 버텼다. 물공급이 차단된 공장에서 소화전으로 고양이 세수를 했고,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이후 5년의 세월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김씨는 “점거 파업 기간에 형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계속 고생하셨고, 이듬해 아내도 뇌종양에 걸렸다”며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나도 가끔 생을 마감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매번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말했다. 택배회사, 화장지 제조공장, 음료회사 등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그가 받는 임금은 야근비, 특근비를 합해 한 달에 160만원 정도. 요즘에는 제지회사에서 트럭을 운전하고 있다.
점거파업 후 징계해고를 당했던 박일씨는 소송에서 이겨 2012년 서울 정비서비스센터로 복직했지만 삶이 팍팍하긴 매 한가지다. 복직 후 2년간 회사는 직업교육과 유급휴직을 반복했고, 그는 지난해 8월에야 일을 할 수 있었다. 박씨는 “가족은 물론 동료들도 복직을 기뻐해줬지만, 마음은 죄스럽다”며 “은퇴식을 연다니 (고생했던 지난 세월이 생각나) 후련하기도 하고 울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 패소 판결 소식을 들은 날 후배들에게 차마 전화할 수가 없어 ‘만나고 싶지만 심정을 알기 때문에 오늘 만나자는 말을 못하겠다’는 문자만 남겼다고 했다.
77일간의 모진 점거 파업 후 각자의 생활로 바빴던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은퇴식 뒤풀이에서 거나하게 취해볼 생각이다. 김씨는 “대법원에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누가 옳은 판단을 했는지는 역사가 말해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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