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또 자살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살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다. 대학에 합격해서 지방에서 서울로 갓 올라왔을 때 처음으로 당혹스러웠던 풍경 중 하나도 자살현장을 목격한 경험이었다. 등굣길에 한강대교에서 건져 올려져 거적으로 덮어진 낯선 사내의 퉁퉁 부은 발가락과 발목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키치죠지로 이동하는 일본의 지하철 노선 중 JR추오센이 있다. 해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이 추오센역을 지나다가 자살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점성술사들은 추오센에 악력이 서려 있다는 변론을 내놓았다. 해석도 다양해서 추오센역은 오렌지색인데 사람에게 오렌지색은 가장 편안하면서도 광기를 일으키는 이상한 감정의 화학을 일으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자극한다고 한다. 오렌지색 때문에 죽을 결심을 한다는 건 좀 지나치다 싶지만 원초적인 미의식이 발달한 일본의 관점으로 보면 미불상한 일도 아니다. 탐미의식에 경도된 예술가들의 자살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생을 미로 완성하고 싶어 하는 의도로 봐주어야 할 테니. 이를테면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 아쿠다와 류노스케 등이 그렇다.
‘자살론’이란 저서로 유명해진 에멜뒤르켐은 “결국 모든 자살이란 타살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관심으로 종지부를 찍고자 한 것이다. 자살에 이성이 부여되는 시점, 즉 자살을 하는 시점은 불완전하고 다양한 문제들에 자신의 능력을 양보하는 시점이고 그 행위인 ‘자살’을 수반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이라는 결론에 닿아야만 가능하다는 다소 변증법적 논리였던 것 같다. 뒤르켐은 자살을 내부에서 무시해온 하나의 관찰을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인간의 무의식으로 여긴다.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전위적인 예술가였던 데랴야마 수우시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자살학 입문’을 역설한다. 그는 자살예찬가로 유명하다. 소년시절 자신이 자살기계에 푹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자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음을 한탄하며 자신의 연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는 복선의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지만 혼자서는 죽을 수 있다고.
그가 자살로 취급할 수 없는 부류로 모아놓은 항목들은 흥미롭다. 즉 이런 부류들의 고민은 자살의 항목에서 예외로 두어야 한다는 것인데, 목록을 들여다보면 제법 의미심장하다. 예를 들어 조루 및 성기 단소로 고민하는 사내, 대학입시에 실패한 사내, 롤링스톤의 음악을 듣고 아무런 느낌도 없는 사내, 치질로 고민하는 사내, 별다른 이유 없이 사는 것이 싫어진 사내, 파친코에 미쳐 주위사람들에게 비난 받는 사내, 의미란 무엇이며 무의미란 무엇인가? 체계화된 사상은 의식의 사유화에 불과하며 1920년대 이후 이데올로기는 늘 역사적인 체제의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목적에 맞게 무의미를 추구하고 자신의 부르주아 사상에 한계를 느끼며… 라는 식의 질문에 사로잡힌 사내, 숫총각, 숫처녀, 저소득 노동자, 상어지느러미 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내, 여자에게 사랑 받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내, 다카쿠라 젠의 영화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내, 공금횡령, 도산, 생활고 등에 시달리는 사내, 무좀에 시달리는 사내. 이상의 부류는 자살로 취급할 수 없단다.
JR추오센의 해마다 늘어나는 자살률을 막아보기 위해 일본 정부는 일명 ‘추오센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설해 대책 및 사상사고 대책의 일환으로 러시아워 시간과 야간에 직원들을 대거 파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고율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와 공무원들은 결국 자살자들이 대충 4가지 항목 중 하나 때문에 이곳에서의 자살을 선택한다고 보고서를 올렸다.
1. 달려오는 전차가 잘 보여 뛰어들기 좋다. 2. 쾌속열차의 통과역이 많아서 생각이 들면 아무 플랫폼에나 내려서 바로 뛰어들 수 있다. 3. 발차 시 나오는 조용한 음악이 자살충동을 일으킨다. 4. 일반적으로 자살자는 깨끗한 장소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곳에서는 멀리 후지산의 청명한 모습이나 자살로 유명한 타미가와 상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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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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