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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링턴과 함께 떠나는 기차 여행… 공드리가 빚은 환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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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링턴과 함께 떠나는 기차 여행… 공드리가 빚은 환상 속으로

입력
2014.12.0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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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드 인디고'와 듀크 엘링턴의 '테이크 디 에이 트레인'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든 감독에게는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왕조 시절 임금이 공신에게 면책특권을 준 것처럼. 두 번째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을 내놨을 때 그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프랑스의 독창적인 비주얼리스트 미셸 공드리(50) 감독.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업을 이뤄서인지 그에겐 그걸 쓸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힘겹게 구한 면책특권을 그는 2011년 재앙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린 호넷’으로 날려버렸다.

11일 개봉하는 ‘무드 인디고’는 공드리 감독이 무너진 자존심을 복원하기 위해 공들인 영화다. 스윙 재즈 연주로 칵테일을 제조하는 피아노를 발명해 큰돈을 번 콜랭(로망 뒤리스)이 클로에(오드리 토투)를 만나 운명 같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줄거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같은 아날로그 시각효과에 동화적 설정, 고전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품을 사용한 낭만적인 연출이 눈을 호강하게 한다.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의 재주를 한껏 부린 오프닝부터 눈이 휘둥그래진다. 타자기, 흑백 텔레비전, 오래된 초인종 등 고풍스런 골동품을 현대적인 시각효과의 오브제로 사용해 움직이는 회화 작품을 만들어낸다. 수도꼭지에서 뱀장어가 나오고 인간 생쥐가 야채를 키우며 초인종은 짧게 잘린 전선을 다리 삼아 바퀴벌레처럼 벽을 기어 다닌다. 늘어난 두 다리를 기역(ㄱ)자로 휘며 추는 ‘비글무아’ 춤과 구름모양의 캡슐 비행선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현재와 과거가 시치미 뚝 떼고 동거하는 도입부의 들썩거리는 리듬을 우아하게 반주해주는 주인공은 위대한 재즈 작곡가 듀크 엘링턴(1899~1974)이다. 프랑스 작가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1947)을 각색한 영화의 영어 제목 ‘무드 인디고’(원제는 원작과 같다) 역시 엘링턴의 곡 제목과 같다. 오프닝에 쓰인 곡은 엘링턴과 콤비를 이뤘던 작곡가 빌리 스트레이혼이 1939년에 쓴 ‘테이크 디 에이 트레인’이다.

☞ 영화 '무드 인디고' OST 'Take The ‘A’ Train'

스윙 재즈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이 명곡에겐 하마터면 영원히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사연이 있다. 때는 1940년. 사실상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던 음악저작권 단체인 아스캅(ASCAP)이 사용자들에게 과다 사용료를 징수하자 연주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엔 라디오 방송이 레코드 재생보다 라이브 연주 위주였기 때문에 연주자들로선 갑작스레 늘어난 지출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작곡가 겸 연주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스캅 소속이었던 엘링턴은 신생 저작권 단체인 BMI 소속의 스트레이혼에게 새 음악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엘링턴의 아들 머서는 그때 스트레이혼이 쓰레기통에 버렸던 작곡 노트를 기억해냈다. 스트레이혼과 엘링턴은 이를 토대로 불후의 명곡 ‘테이크 디 에이 트레인’을 완성해 1941년 발표했고 금세 엘링턴 밴드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제목은 스트레이혼이 엘링턴을 처음 만나러 갔을 때 그가 자신에게 “지하철 노선 A를 타고 오라”고 했던 걸 떠올려 지은 것이다.

영화엔 엘링턴의 곡이 몇 곡 더 등장한다.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클로에’ 역시 듀크 엘링턴의 곡이다. 엘링턴의 음악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건 콜랭과 클로에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마다 나오는 에티엔 샤리의 ‘더 레스트 오브 마이 라이프’다. 고풍스런 팝 발라드가 영상의 달콤함을 배가시킨다. 샤리는 감독과 20년 전 ‘위위’라는 밴드에 함께 몸 담으며 호흡을 맞췄던 작곡가다.

‘무드 인디고’는 프랑스에서 131분짜리 버전으로 개봉했으나 재편집을 거쳐 해외에선 95분짜리로 상영한다. 화사하고 경쾌하게 시작한 이 영화는 폐에 수련이 자라는 병 때문에 클로에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서 점점 어둡고 쓸쓸하게 변해간다. 화사한 총천연색 화면도 점점 생기를 잃다가 결국 흑백으로 바뀐다. 주인공들이 ‘테이크 디 에이 트레인’을 들으며 비글무아 춤을 추는 걸 보고 싶다는 기대는 비극적인 결말과 엘링턴의 우울한 발라드 ‘아프리칸 플라워’로 완전히 차단된다. 첫 맛은 달고 끝 맛은 쓴 영화랄까. ‘이터널 선샤인’만큼은 아니지만 중독성이 꽤 강한 작품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에티엔 샤리의 ‘The Rest of My Life’

듀크 엘링턴의 ‘Fleurette Africaine(African Flower)’

MBC ‘출발! 비디오여행’의 ‘영화 발굴 프로젝트’에 소개된 ‘무드 인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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