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아동청소년 분야 출판물은 극심한 출판 불황 속에서도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둔 해였다. 그 결실은 10여 년 이상 이 분야의 출판기획자와 작가들이 꾸준히 기울여 온 노력 덕분이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그림책의 경우 불황의 영향 탓인지 대형 출판사 중심으로 출간 종수가 몰린 것도 특징적인 현상이다. 이런 와중에도 작은 출판사들이 의욕적인 작품으로 분투했다. 제한된 종수를 선정하느라 후보작에 올리지 못한 작은 출판사의 몇몇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마지막까지 아쉬움에 손을 놓기 어려웠다.
올해 드러난 경향은 다양하다. 예전 같으면 출간이 어려웠을 실험적인 걸작(‘빅 피쉬’ 등)이 빛을 보았고, 우리 옛이야기의 맛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그림책 화법으로 재해석한 작품(‘깜박깜박 도깨비’, ‘호랑이, 오누이 쫓아가는듸, 궁딱!’ 등)이 나왔으며, 거장의 글과 중견 화가의 그림이 만나 완성도 높은 결과물(‘5대 가족’ 등)을 만들어 냈다.
동화에서는 어린이의 자율적 시선이 더욱 선명해졌으며(‘나의 친친 할아버지께’) 청소년문학에서는 회고적 성장 서사나 사춘기의 징후 묘사를 뛰어넘어 견고한 문학적 개성을 지닌 작품들(‘델 문도’, ‘뺑덕’ 등)이 등장했다. 어린이 지식정보책 분야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사는 터전의 특징을 반영한 좋은 기획물들이 등장했다. 이 분야가 워낙 품이 많이 들고 여러 각도의 고려와 정교한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고무적인 일이다(‘우리 땅 기차 여행’ 등).
어린이책이 무거운 엄숙주의를 벗고 아이들의 웃음에 한층 가까이 다가간 것도 인상적이다. 아이들의 삶에서 조금도 경쾌함을 덜어내지 않고 그들의 호기심을 생생히 살린 작가와 편집자의 내공이 돋보였다(‘진짜 코파는 이야기’ 등).
한편 예술로서 그림책이 지니는 독립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면서 예리하고 깊이 있는 풍자를 통해 독자의 범주를 어린이로부터 어른까지 확장하는 신선한 작품들도 더 많아졌다.(‘고슴도치 엑스’, ‘빅 피쉬’, ‘플라스틱 섬’ 등)
15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 ‘우리시 그림책’ 시리즈의 완간본 ‘강아지와 염소 새끼’는 이 시리즈가 어떤 섬세하고 치열한 경로를 거쳐 탄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세상을 떠난 권정생 선생의 유년 시절 시를 발굴하고 그림 작가는 전국의 염소 농장을 찾아다니면서 그 시에 가장 어울리는 얼굴의 염소를 찾고자 정성을 기울였다. 열 몇 장으로 이뤄진 그림책 한 권에 3년 이상 공을 들인 것이다. ‘독자’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작가들의 책임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지은ㆍ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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