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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우울한 송년회

입력
2014.12.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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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마오쩌둥 덕분에 잘 살아왔는데 …”

올 상반기 중국 광둥성의 공장을 필리핀으로 옮긴 중견 IT기업 대표 A씨. 인건비가 12년 만에 무려 4배나 올랐다는 중국을 떠나 마닐라 인근에 새로 둥지를 튼 그는 역설적으로 마오쩌둥 이야기를 꺼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개혁 개방이 20년 늦어지는 바람에 한국이 중국을 앞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지만 이제 그 선점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단군이래 우리가 지금처럼 중국보다 잘 산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호시절이 가고 있다”며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식세대는 뭘 먹고 살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철강회사 최고경영자 B씨가 이어 받았다. 밀려드는 중국산 저가제품 때문에 힘들다는 그는 “기업이나 나라나 대세라는 게 있는 데 한국의 대세가 꺾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제조업 모든 분야가 앞으로 5년 안에 중국에 따라 잡힐 것”이라며 “유일하게 돈을 벌고 있다는 반도체라고 무사할까”라고 반문했다.

며칠 전 기업인 송년 모임에 동석했다. 대기업 계열사 사장을 비롯해 중견ㆍ중소기업 오너까지 골고루 포함된 자리였다. 내수 침체가 심각하고 수출도 어렵다지만 기업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여느 모임처럼 청와대 주변의 권력갈등이 먼저 화제에 올랐지만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본업으로 돌아가 차이나 쇼크, 삼성ㆍ한화 빅딜 등 현안들이 입길에 올랐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 하지만 A씨는 비관적이었다. 삼성 등 일부 글로벌 기업을 제외하고는 중국 내수시장에 파고드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단다. 현지인들이 장악한 유통망을 뚫기도 어려울 뿐 더러, 제품을 내놓기 무섭게 짝퉁들이 쏟아져 나와 공장을 이전하기 전에도 내수는 포기하고 해외수출만 해 왔다고 한다.

화제는 최근에 있었던 삼성과 한화의 빅딜로 옮겨갔다. 모처럼 듣는 ‘가뭄 속 단비’ 같은 뉴스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세일오일의 등장과 중국 및 중동의 생산과잉으로 전망이 불투명한 화학부문을 비롯해 비주력인 방산부문을 떨궈낸 삼성에 대해 “참 얄미울 정도로 재빠르다”고 한마디씩 하면서도 리더십을 인정했다. 이제 재벌이라고 모든 걸 다 거느리는 선단식 경영은 어려울 것이라거나,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사업 재편은 다른 기업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촌평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참석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건 돈을 쌓아놓은 삼성도 계열사를 파는데, 현대차가 10조원이 넘는 돈을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에 쏟아 부은 게 잘한 선택이냐는 문제제기였다. 미래자동차 가운데 수소연료전지 쪽에 집중하는 현대차가 그 돈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전기차 분야를 키우는 차원에서 미국의 혁신적 전기차 ‘테슬라’ 지분을 사들였다면 어땠을까, 한국 경제에 던지는 긍정적 메시지가 지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지적이었다.

물론 비관적 목소리만 나온 게 아니었다. 주력산업의 위기 속에서도 소프트웨어와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분야 등에 전력 투구해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좌중의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결국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뜻밖에도 기업인 대부분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 우리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해 제조업에서 새로운 모멘텀과 패러다임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은 대ㆍ중소기업이 한결같았다. 한 참석자는 우선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개성공단 같은 것을 추가로 5, 6개 만들고 미국으로부터 공단제품을 국내 원산지로 인정받는 것이 급하다고 했다.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등 주요 현안에 대한 해법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이라는 주장이 틀린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는데, 이 대목에서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측근과 비선들의 권력암투로 대통령의 리더십은 실종되고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뭘 기대하겠나. 술이나 먹자”는 누군가의 말 때문이었다. 밤 늦도록 잔은 돌았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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