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끊기고 툭하면 주사… 술 그만 마시라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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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끊기고 툭하면 주사… 술 그만 마시라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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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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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이 억제성 신경 마비시켜

지속되면 치매 같은 뇌기능 저하

상담ㆍ치료 의무화 등 대책 절실

과도한 음주는 뇌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술을 마신 후 필름이 끊기고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한다면 이는 우리 몸이 술을 그만 마시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음주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직장상사와 관계가 껄끄러운 직장인 A씨는 연말연시를 맞아 관계복원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다. 일을 떠나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고 이해를 구하려 술자리를 가졌지만 관계는 악화됐다. 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처음부터 과하게 술을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과도하게 술을 마신 A씨는 그 동안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켰고 이에 직장상사는 술 자리를 거부하고 술집에서 나가버렸다. A씨는 다음날 출근했을 때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상사에게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몰라 애만 태웠다.

● 주취 사고 한해 100만명… 음주범죄 비용 연간 8조원 초과

매년 소주 30억병, 맥주 40억병을 소비하는 나라, 매일 600만명이 소주와 맥주를 1,800만병을 마시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술 권하는 사회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 경찰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무질서형 주취소란자(50만명), 범죄형 주취자(20만명), 음주운전자 (35만명) 등 매년 100만명이 주취 관련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ㆍ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연간 주취자 처리비용만 440억원이 들고, 만취자 행패로 인한 비용도 2,4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음주운전 교통사고 인한 비용도 6,500억원이 발생하는 등 음주상태 범죄비용으로 매년 8조8,147억원이 소요되고 있다. 성인인구의 3명 중 1명은 폭음, 4명 중 1명은 고위험음주군에 해당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주취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주취상태에 이르면 왜 폭언을 하고, 폭행을 저지르고 심지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길거리에 쓰러질까. 과도하게 알코올을 섭취하면 뇌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뇌는 행동을 장려하는 흥분성 신경과 행동을 자제하게 하는 억제성 신경이 있는데 알코올이 뇌에 흡수되면 행동을 자제시키는 억제성 신경이 마비돼 감정조절이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직장상사나 동료들과 관계개선을 위해 어렵사리 술자리를 만들었지만 관계개선은커녕 낭패를 봤다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서 교수는 “첫 잔을 마셨을 때 우리 몸이 알코올을 흡수해 뇌에 전달하는데 약 25분이 소요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첫 잔을 순식간에 비워버리고 계속 술을 마시기 때문에 25분이 지나면 거의 만취상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며 “알코올이 억제성 신경을 마비시켜 감정이 폭발해 의도하지 않은 행동과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마음드림의원 원장)는 “소위 필름이 끊긴다고 하는 것은 알코올을 남용했을 때 이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로 통계에 따르면 음주자의 35%가 이런 일시적인 선행기억 상실을 경험한다”며 “평소에 점잖았던 사람이 술을 마시면 예의와 체면을 잃어버리고 의외의 행동과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장기간 지속적으로 음주를 하면 뇌 위축이 진행돼 치매와 같은 뇌기능 저하가 발생하는데 이 상태가 되면 기억력 저하는 물론 성격ㆍ수면주기 변화로 인한 불면증, 판단력과 지각능력 저하 등이 발생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주위에서 술 때문에 폐인이 됐다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피면 성격이 변하고, 남을 의심하는 등 변화가 오는데 이는 알코올성 치매 때문”이라고 했다.

● 음주로 인한 잦은 실수는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

음주자의 35%가 경험한 일시적 선행기억 상실은 병이 아닐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일시적 선행기억 상실이 반복된다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계성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회식ㆍ모임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한 번이라도 실수를 했다면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면 내 몸이 나에게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몸이 보내는 사전신호는 무엇이 있을까. 이 교수에 따르면 직장이나 가정에서 ‘술을 너무 과하게 마신다’는 경고나 주의를 들었다면 술을 삼가야 한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편의점에서 술을 구입하거나 집 앞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도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증거다. 친구를 만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기 위해 퇴근 전 지인들에게 연락해 술자리를 만들고 있다면 이 또한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애주가와 알코올중독자는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술자리에서 연이어 실수를 하거나 귀가를 제대로 못하면 이는 실수가 아니라 중독으로 가는 과정이기에 반드시 전문가의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가장 위험한 신호는 다름 아닌 해장술이다. 이 교수는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은 술을 마셔 얻을 수 있는 유쾌하고 즐거운 기분보다 불안, 초조, 불쾌감 등 부정적인 기분을 보상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해장술은 술을 깰 때 느끼는 불안이나 초조, 숙취감을 해소하는데 일조하기에 만약 해장술을 즐긴다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이런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실제 마신 술과 자기가 마셨다고 생각하는 음주량에 차이가 있다”며 “자신이 마신 술의 양을 부정하는 단계에 온 사람이라면 알코올중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발생하는 것이 주취자 안전사고다. 최근 평택에서 발생한 주취자 사망사건은 경찰의 안일한 대응이 문제였지만 길가에 쓰러져 있는 주취자들을 목격하고도 개인적으로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지나치는 것이 현실이다. 유기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길거리에 쓰려져 있는 주취자의 경우 호흡곤란을 겪을 수 있는데 고개를 뒤로 젖혀주기만 해도 기도가 유지돼 숨을 쉴 수 있다”며 “만약 입에 이물질이 있다면 옆으로 몸을 돌려 이물질이 흘러내리게 하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송경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추운 겨울날 음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길에 쓰러지면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무리하게 응급조치를 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주취자 상태가 좋지 않다면 119로, 단순주취자일 경우 112로 신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음주 후 구토를 잘못해 이물질이 폐로 넘어가 염증이 생기는 흡인성 폐렴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 “과도한 음주 후 1,2일이 지난 후 열이 나고 기침을 계속하면 흡인성 폐렴인지 의심해야 한다”고 했다.

● 주취자 관련 법적제재 강화 필요… 치료개입도 절실

매년 50만명에 이르는 주취소란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강화돼야 주취로 인한 사건, 사고가 감소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주취소란 행위에 대한 범칙금이 고작 5만원이고 관공서에서 주취소란을 범했을 경우 6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을 수 있는데 미국ㆍ프랑스ㆍ영국처럼 주취로 인한 벌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주치소란자에 대해 미국은 117만2,000원, 영국은 183만원, 프랑스는 477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내년 2월 경 주취문제를 야기시킨 이들에게 단순히 범칙금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알코올상담센터에서 상담ㆍ치료를 받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될 것”이라며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주취자 문제해결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원장은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폭행, 강도, 강간,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의 경우 약 30%가 음주상태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주취자에 대한 의학적 평가와 치료적 개입은 물론 지속적인 관리체계 부재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송 교수는 “일반 주취자들을 가정이나 직장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내고 궁극적으로 숨어 있는 알코올중독자를 찾아 상담, 치료프로그램을 연결해 알코올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중앙의료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서울동부병원, 적십자병원 등에서 주취자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 시설에 이송되는 주취자의 90% 이상이 행려, 노숙자 수준의 주취자”라며 “의료기관과 경찰업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만성 주취자들에 대한 대책마련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부모가 주취자이면 자녀가 성인이 돼 주취자가 될 확률이 높다”며 “피부, 장기, 뇌까지 손상시키는 ‘마법의 탄환’인 알코올을 무서워하지 않고 서로를 알코올중독자로 만들고 있는 우리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는 “주취로 인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음주 때 행동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보여만 줘도 개선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 소주 2병 문제없는 당신… 10시간 이상 해독 필요

제 아무리 주당이라 해도 빨리 마시는 술에는 장사가 없다. 개인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1시간 동안 분해되는 알코올 양은 10g 정도다. 술을 마실 때 얼굴이 쉽게 빨개지는 사람은 분해 능력이 떨어져 쉽게 술에 취하고, 알코올 분해 능력이 좋은 사람은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데, 재미있는 것은 마시는 양에 상관없이 분해되는 알코올 양은 일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술의 알코올 양을 계산하면 자신이 섭취한 알코올 양과 분해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알코올 10g이 포함된 술 한잔을 ‘표준잔’이라 한다. 예를 들어 소주 한 병이 자신의 주량이라고 가정하면, 한 병에 해당하는 양인 360㎖에 알코올 도수(18%)와 0.8(㎖를 알코올 질량 기준으로 바꿔주기 위한 지수)을 곱하면 51.84g이 나온다. 표준잔으로 5잔이 넘는 수치다. 알코올 10g이 분해되는데 필요한 시간이 1시간 정도이기에 소주 한 병이 주량인 사람이 숙취가 해소되려면 5시간 이상 필요한 셈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남성은 하루에 표준잔 2잔, 일주일에 표준잔 14잔 이하를, 여성은 하루에 표준잔 1잔, 일주일에 표준잔 7잔 이하를 마실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지속적으로 알코올을 흡수하면 알코올중독에 앞서 뇌가 손상된다”며 “술은 어머니와 같아서 고통을 가진 인간은 어린아이처럼 술의 품에 안겨 마냥 취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연말연시에 술로 인해 잦은 실수를 하거나 술로 감정을 다스리려 한다면 술에 의존하려 하는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사람은 좋은데 주사가 좀 있다’며 음주에 대한 관용적인 문화가 주취자를 양산하고 있는데 음주소란, 주취 관련 범죄자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치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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