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전국 법원장 회의 모두발언

양승태 대법원장은 5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재판은 으레 3심을 거치는 것이라는 낭비적ㆍ소모적인 인식 바꿔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하 모두발언 전문.
다사다난했던 2014년 한 해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아픔과 슬픔으로 우리 모두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한 중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준 모든 법원 가족과 법원장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법원이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엄청난 양의 사건부담을 차질 없이 감당하면서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것은 모든 법원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입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각종 포럼이나 리더십 향상을 위한 모임 기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사회 변화의 물결을 감지하며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법원 구성원들의 정열이 바로 밝은 미래를 향하는 사법부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우리는 소통을 통한 국민의 신뢰 확보를 가장 주요한 과제로 삼고 온 힘을 쏟아 왔습니다. 진정한 마음과 절박한 심정으로 전례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공을 들여온 결과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이해도가 차츰 높아지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법부 일각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물의가 그 노력의 빛을 바래게 하고 특히 금년 초 환형유치에 관한 오래 전의 재판이 새삼 문제로 부각되면서 공든 탑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안목으로 이 모든 일들을 돌아보며 냉철하게 앞날을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올해 겪은 일련의 일들 속에서 사법신뢰의 실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며 국민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우리의 진정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작은 물의 하나로 비난의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그간에 거둔 성과도 모두 묻히고 마는 작금의 현상은 사법부의 신뢰 기반이 얼마나 취약하고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국민의 신뢰는 사법부 존립의 근거로서, 이러한 상황이 악화되면 재판독립의 원칙에 터 잡은 사법권의 근간이 위태로워짐을 직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비판과 비난이 지나침을 탓하기에 앞서 신뢰의 뿌리부터 강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굳건한 신뢰기반의 구축을 위하여 먼저 우리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 내부의 모든 부분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오랜 기간 우리가 의심 없이 행하고 있던 것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타성과 관행에 젖은 무관심과 방관이야말로 가장 경계하여야 할 신뢰의 적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법수요자의 시각에서 각자가 무심코 행하는 업무수행방식에 과연 문제가 없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법부가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책무가 재판업무일진대, 법원에 대한 신뢰 또한 재판에서 시작되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과중한 사건의 부담 속에서 격렬한 다툼을 만족스럽게 해결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사건 처리만을 위주로 메마르고 기계적으로 재판을 하는 것은 불신만 가중시키는 가치 없는 일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혜롭게 타개해 나가는 것은 모든 법원 구성원, 특히 법관에게 맡겨진 숙명적인 임무입니다. 재판은 의례 3심을 거치는 것이라는 낭비적?소모적인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데 온갖 지혜를 쏟아야 합니다. 재판에 대한 상소율을 낮추고, 하급심의 재판이 상급심에서 좀처럼 뒤바뀌지 않도록 함으로써 재판은 1심으로 그치는 것이 원칙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는 것이 우리의 종국적인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1심에서의 충실하고 만족도 높은 심리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상급심에서도 심급제도의 운영에 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리라 믿습니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재판업무의 수행과정에서 더욱 요구될 것입니다. 당사자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진정한 마음을 가지고, 법원이 공정하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진지하게 고뇌하고 있다는 강렬한 인식을 당사자에게 각인하는 설득력 있는 재판만이 신뢰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법원 구성원들이 이를 위한 새로운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법원장 여러분의 강한 지휘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온 힘을 쏟았던 소통을 통한 국민과의 교류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재점검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소통의 활동과 성과는 그대로 이어가야 하겠지만 마냥 권태로운 답습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간의 효과를 분석하고 새로이 알게 된 국민의 참뜻을 현장에 신속히 반영하여 국민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한편 새롭고 참신한 요소를 가미하고 개발하여 살아있는 정책을 고안 추진함으로써 국민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신선한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시도 과정에는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실패도 있을 수 있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큰 위험은 위험 없는 삶 그 자체’라고 하였습니다. 올 한 해에도 법원장 여러분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노력을 치하합니다. 그러한 헌신은 국민의 신뢰에 관한 진정한 인식과 이를 획득하려는 굳은 의지가 없이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존립의 기초로 하는 사법부에서 소통에 종착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력이 법원장 여러분의 강력한 지휘 아래 전국의 법원으로 퍼져 나가기를 진정 기대합니다.
우리 앞에는 산적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법부의 기본적 업무인 재판 역량에 대한 신뢰의 발판을 확고히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는 종국적으로 사법부의 헌법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것이지만, 법원에 몸을 담고 있는 모든 구성원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극단적인 대립과 불신풍조가 만연하는 사회 분위기와 과중한 사건 부담 속에서 신뢰까지 획득하는 여유 있는 분쟁의 해결방법을 모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전국의 법원 가족 여러분이 보여준 사명감과 열정 그리고 성실성과 함께라면 어떠한 어려운 과제도 능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국민의 탄탄한 신뢰 위에 흔들림 없이 우뚝 서는 사법부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합시다.
법원장 여러분과 법원 가족들이 올 한 해 동안 보여준 헌신적인 노고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4. 12. 5.
대법원장 양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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