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일등석 2009년보다 34% ↑
금융위기 겪은 美ㆍ유럽선 감소세
일등석 승객 환승 땐 리무진 이동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에티하드항공은 이달 새로운 일등석을 선보인다. ‘석’(席)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넓고 화려하다. 방 세 개에 거실을 갖췄다. 샤워실도 딸려있다. 영국의 고급호텔 사보이에서 교육받은 직원이 어떤 ‘분부’든지 들어줄 태세로 대기하고 승객 두 명당 한 명꼴의 전속 요리사가 함께한다. ‘레지던스’라는 명칭이 붙은 이 일등석의 면적은 125 평방피트(약 38㎡)다. 하늘 위의 호텔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와 영국 런던을 오갈 A380 비행기에 적용될 예정이다. 편도 비용만 2만달러(약 2,230만원)이나 전용기를 이용할 때 드는 10만달러(약 1억1,150만원)에 비하면 무척 저렴하면서도 서비스가 빼어나기에 수요가 충분하다고 에티하드항공은 판단하고 있다.
에티하드항공의 사례는 최근 세계 항공업계의 치열한 일등석 경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부터 전세계를 궁지에 몰아넣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등석 수요는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영국의 항공데이터조사회사 OAG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항공사의 일등석 이용은 2009년보다 34%나 급증했다. 비즈니스석이 일등석으로 종종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국내선의 수치를 제외해도 21%가 증가했다. 유럽의 경우 2005년~2009년 일등석이 급감했으나 이후 급반등해 올해 일등석 수는 2005년의 두 배를 넘는다. 경기가 나빠졌으니 일등석 수요가 줄었을 것이라는 상식적 추정을 뒤집는 수치들이다.
일등석 수의 증가는 중국과 중동 항공 시장의 영향이 컸다. 세계 경제의 아랫목인 중국과 중동의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의 일등석 사랑은 불경기 속에서 되려 뜨거워졌다. 중국의 중국항공은 지난 5년 동안 일등석이 63% 늘었다. 동방항공은 127%나 급증했다. 중동의 카타르항공은 132%, 에미레이트항공은 32%가 각각 늘어났다. 카타르항공과 루프투한자 등 여러 항공사의 일등석 작업에 참여한 디자인 회사 프리츠먼구드의 나이젤 구드 이사는 “중동과 아시아에서는 일등석이 항공사의 전반적인 품질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중동과 달리 유럽은 응달이다. 2009년 이후 에어프랑스의 일등석 수요는 47%나 급감했고, 영국항공은 23%가 줄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비용 절감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경영자들이 일등석보다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있는 여파다. 일등석에 버금가는 비즈니스석이 등장하면서 일등석은 외면 받고 있다.
지역적 편차가 있다고 하나 일등석 이용의 증가는 치열한 경쟁을 의미한다. 그저 그런 일등석으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압박이 항공사들을 억누른다. 유럽 시장에서 고가의 일등석을 팔 수 없으니 아시아와 중동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항공사마다 갖가지 일등석을 개발하고 있다.
에어프랑스는 최근 보잉 777-300의 일등석 수를 8개에서 4개로 줄였다. 보다 넓고 편안해 일등석을 제공해 돈 많은 고객을 유혹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라 프리미어’(La Premiereㆍ프랑스어로 ‘우선’이라는 뜻)로 불릴 이 일등석은 상하이 노선에서 첫 선을 보였다. 영국항공도 손바느질로 완성한 가죽재질의 새로운 일등석을 내년 내놓을 예정이다.
일등석 경쟁은 비행기 밖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스파를 갖춘 라운지와 유명 요리사의 음식은 기본이다. 에어프랑스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일등석 승객을 전용 리무진으로 모신다. 루프트한자는 한 술 더 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하는 일등석 손님은 대기하는 동안 고급 스포츠카 포르쉐를 운전하며 기분전환 할 수 있다. 일등석 좌석을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거나 침대 관리를 유명 호텔이 전담하는 등의 아이디어도 쏟아지고 있다.
일등석 전성시대에 대한 경계 목소리도 있다. 항공시장을 주도해온 미국 항공업계는 일등석 전쟁의 열외이기 때문이다. 미국 항공사들의 국제선 일등석 이용은 2009년 이후 24% 줄었다. 영국의 교통 분석가 제랄드 쿠는 “고객을 위해 지나치게 돈을 많이 쏟아 부으면 수익도 낮을 수 밖에 없다”며 “미국 항공업계가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일등석 시장의) 향배도 결정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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