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학자 손남익 강릉원주대 교수, 부사 1만2000개 모아 부사사전 출간
“송괴스레, 우무럭우무럭, 어룽어룽”… 부사만 모은 ‘부사사전’ 출간
‘부사학자’ 손남익 강릉원주대 교수 “우리말 미묘한 표현 가능한 건 부사 덕분… 부사만으로 대답이 되는 재미있는 특성도 지녀”
‘송름스레’, ‘어령칙이’, ‘뻘꺽뻘꺽’…
귀 설게 들려도 모두 우리말 부사다. ‘송름스레’는 ‘두려워 마음이 불안한 느낌이 있게’, ‘어령칙이’는 ‘기억이나 형상 따위가 긴가민가하여 뚜렷하지 아니하게’란 뜻이다. 그렇다면 ‘뻘꺽뻘꺽’은 무슨 말일까. ‘빚어놓은 술이 부걱부걱 괴어 오르는 소리나 모양, 혹은 빨래를 삶을 때 부풀어 오르는 소리’를 일컫는다. 진흙이나 밀가루 따위의 반죽을 세게 주무르거나 밟을 때도 이 부사를 쓴다. 뜻을 알고 보니 음도 훨씬 정겹다.
우리말의 부사는 사투리를 빼고 표준어만 1만2,000여개에 이를 정도로 풍부하다. 손남익(53ㆍ사진) 강릉원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우리말의 매력과 장점은 부사 덕분”이라고 단언한다. “부사가 특히 다양해 감정이나 모양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가 우리말의 부사만 추려 ‘부사사전’(역락)을 펴낸 이유다. 국문학자가 특정 품사를 모은 사전을 출간한 건 처음이다.
부사의 독특함도 손 교수를 사로잡았다. “부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품사예요. 예를 들어 ‘너 언제 학교 가니?’라고 물었을 때 ‘지금’이라고만 해도 대답이 되죠.”
때로는 부사 하나가 한 문장 전체를 집약하기도 한다. “그가 정말 왔다”라는 문장에서 가장 초점이 되는 건 주어도 서술어도 아닌 ‘정말’이라는 부사다. 문장의 운율도 살린다. “아이는 출출했는지 떡을 ‘뭉떵뭉떵’(잇따라 제법 크게 잘리거나 끊어지는 모양) 베어 먹었다”에서 우리는 보지 않고도 아이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귀엽게 떡을 먹는지 그릴 수 있다. 나도향은 ‘환희’에서 ‘어룽어룽’(뚜렷하지 않고 흐리게 어른거리는 모양)을 써 달빛을 묘사했다. “달빛의 은실같이 보이는 물결은 여러 겹의 동그라미를 어룽어룽 사면으로 펴 놓고 싸라기 같은 물방울을 여기저기 휘두르며 무도를 한다.”
손 교수는 “우리말의 부사는 의사소통에서 아주 중요한 논리적 항목을 지닌 재미있는 품사이면서 고유어가 많다”며 “그렇기에 부사를 집대성해 연구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부사사전’에서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부사의 분류다. 모양을 나타내는지, 감정을 표현하는지, 크기를 뜻하는지 등을 일일이 적시한 것이다. 또 자연스러운 주어와 술어를 기술했다. ‘의미’와 ‘제약’ 항목이 그것이다. 단어의 풀이말, 쓰임새 위주로 정리한 일반 사전과 가장 큰 차이다.
예를 들어 이 사전에서 ‘송괴스레’(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느낌이 있게)를 찾아보면, 의미 항목에 “[+느낌], [+죄송], [+수치]”라고 적혀있다. 느낌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죄송스럽거나 수치스러운 감정이란 얘기다. 또 사람을 주어로 하면서 ‘생각하다’라는 동사와 잘 어울린다. 이를 제약 항목에 “{사람}-{생각하다}”로 풀어놨다.
손 교수는 “연구를 진척시키면 ‘웃음을 표현하는 부사’, ‘액체의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 등의 색인으로 부사를 찾을 수 있는 사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온라인 국어사전을 이용하면 되지 무슨 종이사전이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터다. 손 교수의 답은 이렇다. “온라인 사전은 탐색의 기능만 있지, 학습 기능은 없어요. 종이 사전은 모르는 어휘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실제 1만2,000개 부사 중 우리가 살면서 쓰는 부사는 500개 정도다. 이토록 맛깔스러운 부사 중에서 실제 맛보는 건 5%뿐이란 얘기다. 국어학자인 손 교수 역시 사전을 편찬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부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우무럭우무럭’ 같은 게 그런 경우다. 굼뜨게 자꾸 꾸물거리는 모양을 표현하는 부사로, 벌레가 움직일 때 쓴다.
손 교수는 “사전은 ‘언어의 창고’인데 우리나라는 사전 값이 너무 비싸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사사전’도 7만원이다. “큰 돈 들이지 않아도 사전을 옆에 두고 보면서 우리말을 풍요롭게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출판 지원을 하는 등 사전 대중화에 나서면 좋겠습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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