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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지점을 느껴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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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지점을 느껴보고 싶다면...

입력
2014.12.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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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격렬하고 과격적" 평가처럼

단순한 줄거리에 강한 개성 녹여

딸아이를 죽인 제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충격적인 복수를 하는 여교사(‘고백’), 제자의 절도사건으로 교직에서 해고된 뒤 가출해 창녀, 살인자 등을 전전하다 강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비운의 여인(‘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일본 감독 나카시마 데츠야(55)의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파란만장하다.

4일 개봉한 그의 신작 ‘갈증’의 주인공 가나코(고마쓰 나나)는 한술 더 뜬다. 여고생 신분에 야쿠자와 거래하고 동급생을 마약과 매춘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아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채 이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가나코의 악마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어디를 향한 것일까.

영화 ‘시민 케인’의 서사 방식을 따르듯 이 작품은 사건의 제3자가 주인공의 비밀을 찾아 여러 인물을 만나고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인물은 가나코의 아버지이자 전직 형사인 아키카주(야쿠쇼 고지). 아내의 불륜 상대를 폭행한 뒤 가정과 직장을 잃고 폐인처럼 살던 그는 딸이 실종됐다는 전처의 말을 듣고 딸을 찾아 나선다. 알코올 중독에 분노조절 장애로 불안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그는 딸과 관련한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해하기 힘든 악마성을 지닌 가나코를 연기한 고마쓰 나나는 ‘갈증’ 출연 전만 해도 연기 경력이 전무한 광고 모델이었다.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 배우 야쿠쇼 고지(오른쪽)는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광기 어린 열연으로 호평 받았다. 찬란 제공
이해하기 힘든 악마성을 지닌 가나코를 연기한 고마쓰 나나는 ‘갈증’ 출연 전만 해도 연기 경력이 전무한 광고 모델이었다. ‘쉘 위 댄스’로 유명한 일본의 국민 배우 야쿠쇼 고지(오른쪽)는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광기 어린 열연으로 호평 받았다. 찬란 제공

“현재 일본에서 가장 격렬하고 과격하며 현란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이라는 김지운 감독의 표현처럼 나카시마 데츠야의 신작 ‘갈증’은 펄펄 끓는 아드레날린으로 가득한 영화다. 과거와 현재를 정신 없이 오가는 편집이나 괴물 같은 캐릭터들, 상상하기도 끔찍한 폭력적인 사건들, 유혈이 낭자한 신체훼손 장면,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 영상, 하드보일드 탐정물과 잔혹 스릴러, 청춘물을 뒤섞는 자유분방한 연출 등 역동적인 에너지가 아우토반을 전력 질주한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파국으로 치닫던 ‘고백’(2010)이나 화사한 색감으로 드라마와 뮤지컬, 판타지를 넘나들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과는 또 다른 성격의 영화다.

‘갈증’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개성이 지나치게 강해 취향에 따라 호오가 분명히 갈릴 듯하다. 줄거리가 단순하지만 가나코와 아키카주에 대한 단서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매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고 현실과 꿈, 기억이 모호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도 길을 잃기 쉽다. 후카마치 아키오의 소설 ‘끝없는 갈증’을 직접 각색한 감독은 “추잡한 인간이자 딸에 대해 조금도 관심이 없던 남자, 하지만 딸이 실종되자 뒤늦게 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최악의 아버지”에 압도됐다며 “상호작용하면서도 상반되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통해 묘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CF 감독 출신인 나카시마 데츠야는 감각적인 영상뿐 아니라 캐릭터를 깊숙이 파고드는 연출로도 유명하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출연해 일본 내 주요 영화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나카타니 미키(이 영화에선 가나코의 담임교사로 출연)처럼 야쿠쇼 고지 역시 ‘갈증’에서 보여준 뛰어난 연기로 올해 시체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에도 팬이 많은 오다기리 죠, 쓰마부키 사토시 등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지점을 느껴보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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