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층·방향 유사해도 가격 차이, 급증하는 반전세는 항목조차 없어
주거실태조사·주택가격통계 등도 표본 수 적어 정부 신뢰도에 타격
내년 봄 결혼을 앞둔 직장인 김정인씨(29ㆍ가명)는 요즘 친정집 인근인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아파트에서 반전세 신혼집을 알아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같은 단지 내 동일 면적임에도 집집마다 보증금과 월세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전용면적 84.93㎡의 경우 보증금은 1억원으로 동일했지만 월세가 80~100만원으로 다양했다. 앞 동의 비슷한 크기의 집은 보증금 1억2,000만원에 월세가 70만원이었다. 김씨는 “크기와 층, 방향 등 조건이 유사한데도 한 아파트 내에서 이렇게 월세가 다르니 어떤 집으로 계약하는 게 더 유리한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임대차 시장이 사실상 월세로 재편되고 있지만 주택 가격 정보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기본적으로 정부의 인구현황통계가 과거 전세 중심에서 월세와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바뀌는 주거형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데다, 이를 토대로 표본을 뽑아 조사하는 각종 부동산 가격 통계가 서로 다른 정보를 내놓으면서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다가구 주택이나 저가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월세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그로 인해 서민들의 주거불안이 심화되는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거래전반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투명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4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아파트의 월세가격지수는 전달보다 0.2% 하락했다. 하지만 부동산 리서치 전문업체인 부동산114 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변동률이 0.01%를 기록, 전달까지 이어진 하락세가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일한 지역에서 조사된 결과 값이 서로 다른 것이다. 이유는 감정원은 전국 8개 시도에서 3,000여가구의 표본을 선정해 매달 조사를 벌인 반면, 부동산 114는 전국 회원사를 통해 파악된 실거래가를 주간 단위로 입력하는 방식 차이 때문이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표본수나 조사기간이 상이해 어느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어 조건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실한 통계 중 가장 대표격은 현존하는 주거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인구현황 통계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가(自家), 전세, 월세, 보증부월세(반전세), 사글세 등 주택 점유방식에 따라 얼마나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이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각종 부동산 통계의 신뢰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계청에서 실시하는 ‘인구주택총조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5년 단위로 이뤄져 주거 변화상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최근 급증하는 반전세는 따로 구분조차 돼 있지 않다. 국토교통부가 2년 마다 실시하는 ‘주거실태조사’의 경우, 월세를 보증부월세와 순수월세로 세분화 하는 등 상대적으로 자세하지만, 표본이 총 3만3,000가구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구현황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하는 주택가격통계 역시 한계가 있긴 마찬가지다.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통해 월세변동추이를 살피는 통계청은 전국 5,500여개 샘플 중 재계약 등 거래가 발생한 경우만 통계에 반영해 실제 표본이 500여개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소비자동향조사’ 역시 임대인 및 임차인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여 예상 추이를 발표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정부 공공기관의 통계에 대한 신뢰도에 의문이 커지면서 KB국민은행이나 부동산114 등 실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민간업체가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 흐름을 대변해야 할 각종 통계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안정화시키고 주거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추진하는 각종 정책의 효과마저 반감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전월세 주택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주거급여제도(주택바우처)’. 세입자들의 신청을 받아 승인심사를 할 때, 당사자가 재산기준(월소득+부동산재산)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 수 있다. 또 민간임대사업자를 위한 세제혜택 등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미진한 것 역시 믿을 만한 통계가 부족한 점이 한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집 주인들이 특정 지역 주택을 매입하는 게 사업성이 있는지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임대차 시장을 좀 더 정교하게 들여다 볼 목적으로 지난 9월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이와 함께 국토부 외에 한국감정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6개 기관이 만들고 있는 기관별 통계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한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각종 정책에 앞서 투명한 통계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명 명지대 교수는 “임대차시장 투명화의 토대인 통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질뿐더러,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세입자들의 주거난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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