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봅슬레이 선수로 활약하다
생활고ㆍ일방적 은퇴 통보에 좌절
"어려운 환경 친구들에게 용기 주고파"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운동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자신 있고, 하고 싶은 것이 공부다. 과거 국가대표 봅슬레이ㆍ스켈레톤 선수였고 지금은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소속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아영(28)씨 얘기다.
중학교 1학년 때 매일 떡볶이를 사주겠다는 코치의 말에 역도에 입문한 이씨는 10년 가까이 바벨을 들어 올리다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낙담한 이씨에게 스켈레톤 대표팀으로부터 여자 선수 추천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2007년 스켈레톤 선수로 합류한 뒤 특유의 날렵함과 순발력으로 바로 두각을 나타내자 1년여 만에 이번에는 봅슬레이팀에서 전향 제의가 왔다. “두려웠지만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래서 또 도전했습니다.”
2010년 벤쿠버올림픽을 목표로 국가대표 봅슬레이팀에 들어간 이씨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비인기종목이어서 지원이 변변치 않았고, 병상에 계신 부모를 대신해 가장 노릇까지 해야 했던 탓에 봅슬레이 대표선수는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사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방적인 은퇴 통보까지 받았다. “갑자기 날개가 사라져서 추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할 일을 찾던 중 토익 점수가 있으면 봅슬레이연맹 국제업무를 할 수 있다는 공고를 보고 영어공부에 몰두했다. “영어만 잘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말도 바꿔놓고 싶었습니다.”
있는 돈을 모두 끌어 학원비를 내고 교통비가 없어 걸어 다니면서 하루 20시간을 공부했다. 이씨는 돈을 아끼기 위해 처음에 연필로 적고 다시 볼펜으로 써서 공부했던 노트를 보여줬다. “이렇게 해서 한 달 만에 400점을 올려 800점대 점수를 받았어요. 그 때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
일취월장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서 국제심판 자격을 따냈다. 이후에는 이씨의 표현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펼쳐졌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이사,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소속 도핑검사관, 아이스클라이밍 세계선수권 대회 장내 아나운서, 인천국제체조대회 통역관 등 무수히 많은 직함이 따라왔다.
“예전에는 국적을 바꿔 다른 나라 선수로라도 뛰어볼까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운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군요.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건 아니었어요.”
이씨는 바쁘게 해외를 오가면서도 여전히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최근에는 국제 아이스클라이밍 규정까지 모두 5종목의 국제규정을 번역했다.
“두 가지 꿈이 있어요. 하나는 7개 국어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자가 되는 겁니다. 저희 가족이 힘들어서인 이유도 있지만 저처럼 어려운 환경의 친구들에게 세상이 혹독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걸 알려주고 도움도 주고 싶습니다.”
김새미나 인턴기자 saemi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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