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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호' 아이들을 위한 정원

입력
2014.12.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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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건축사사무소 숨비 대표
김수영 건축사사무소 숨비 대표

현대사회는 많은 종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삶의 질을 가늠하는 척도인 문화혜택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많은 것들 중 하나다. 한편에서는 문화의 과잉 속에서 보다 새로운 것을 누리기 위해 색다른 것을 찾고 부산하게 소비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척박함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문화는 전자보다는 후자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캄캄한 어둠 속 한 줄기 달빛이 유난히 더 밝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흐릿한 빛만 비춰도 수많은 변화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지난 7월 산으로 둘러싸인 소년원에 방문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문화로 행복한 공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찾은 곳이다. 사회ㆍ문화적으로 소외된 곳에 문화와 디자인의 혜택을 제공해 그 공간의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였다. 본래 필자의 생각은 건축가는 전문적인 직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지 건축물을 통해 문화적 혹은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소극적이어서 선뜻 진행 방향을 잡기 쉽지 않았다. 또 문화적 영향력은 비교적 긴 시간을 접해야 결과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4주간의 격리 후 다시 사회로 돌아가는, ‘8호’라 불리는 아이들에게 ‘공간’이란 것이 과연 얼마만큼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이들의 마음에까지 문화라는 씨앗이 잉태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문화기획자 조윤석 선생님과 소년원 아이들, 교사, 시설 관계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 공간을 직접 사용하는 당사자인 아이들은 생각보다 매우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프로젝트가 시작하는 초기, 한 두 주 후면 집으로 돌아갈 아이들은 새로운 시설물들과 프로그램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아니기 때문에 참여에 시큰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뒤를 이어 들어올 다른 아이들을 위해 의견을 내는 적극성을 보였다. 아이들은 매주 글과 그림으로 중정 공간에 대한 바람을 보내주었고, 우리는 그 속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상상을 읽어내 기획에 반영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이런 태도는 소년원도 바꿔 놓았다. 감호시설이라는 특성상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던 관계자들도 야외수업 진행 프로그램이나 수업 결과물 전시 등 새롭게 들어설 시설물의 쓰임새와 운영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주며 적극 협조했다.

그 결과 30명 중 소수의 아이들만이 겨우 족구를 할 수 있었던 소년원 건물 내의 정원은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변모 중이다. 일주일에 불과 4시간 안팎 사용되던 공간은 보다 더 오랜 동안 아이들이 머무를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필자가 소년원을 방문하며 처음 가졌던, 건축이 사회ㆍ문화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단순히 공간에 대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그 곳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깊이 소통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문화 프로그램을 더한다면 건축도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다.

이 곳 말고도 최근 국내 곳곳에서 유사한 성격의 프로젝트들이 많이 진행되며 소외된 곳에 문화라는 이름의 멍석을 펼치고 있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작은 움직임들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또 다른 모습의 문화를 피워냈으면 좋겠다. 문화란 대표적인 경험재이기 때문에 수혜를 받아 본 이들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던 자그마한 정원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의 울림이 가득 찬 풍경을 다시 한 번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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