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의 수장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정규직 과보호’론이 노동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게 일자리를 움켜쥐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부총리의 발언은 난데없는 돌팔매다. 올 한해 금융권에서만 정규직 근로자들의 약 10% 가량이 일자리를 떠났다.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업종을 불문하고 전 부문에 걸쳐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건설업, 조선업 등도 다운사이징의 대상이다. 이렇듯 정규직들의 일자리 수명이 파리 목숨인데 난데없이 ‘정규직 과보호’라니 생뚱맞은 감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부총리는 수많은 과제들을 뒤로하고 개혁의 화살을 그나마 남아있는 양질의 일자리로 돌렸다. 최 부총리가 지목한 대상은 아마도 노동조합이 조직된 대기업(고용규모 300인 이상)에 종사하는 정규직 근로자인 듯한데, 통계로 보면 이 범주에 속한 근로자 비중은 2014년 3월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총 근로자의 7.4%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노동시장에서 보면 그리 큰 비중이 아니다. 반면 노동조합이 없는 중소기업(300인 미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비율은 26.4%에 달한다.
전자에 속한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약 392만원, 평균근속년수는 13.4년, 사회보험 가입률과 퇴직급여 적용률 등은 거의 100%에 이르는 반면, 후자는 월평균 급여 134만여원, 평균근속년수 2.3년, 사회보험과 퇴직급여 적용 수준은 35% 정도다. 통계로만 봐도 노동시장의 아래위 격차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양극화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정부 일각에서는 양극화의 원인 즉, ‘아래쪽’의 열악한 고용 및 노동 조건을 ‘위쪽’ 근로자들에 대한 과보호에서 찾고 있는 듯하며 그 일단이 최 부총리의 발언이었다.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제도적 보호 때문에 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채용 유인이 줄어들며, 그 결과 대기업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노동력이 중소기업, 비정규직 시장으로 흘러 들어 경쟁을 유발하고 일자리가 열악해 진다는 논리다.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기업의 채용 동향은 이런 의문에 해답의 단서를 제공한다. 우선 앞서 언급한 윗 일자리에 채용된 인력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채용인력 중 6.2%인 반면, 아랫 일자리에 채용된 인력은 54.4%에 달한다. 노동시장 내 각 범주의 고용 비중이 각각 7.4%와 26.4%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대기업들은 노동시장 내 비중에 상응하는 인력을 채용한 반면, 미조직 중소기업들은 그들이 현재 채용하고 있는 비중을 훨씬 뛰어넘는 비정규직을 추가 채용한 셈이다. 대기업 일자리에 대한 과보호와 비정규직 일자리의 대규모 확대 사이에 ‘트레이드 오프’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우선 경제의 구조적 부조화로 중간층 일자리가 궁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중소기업들의 수직계열화 메커니즘은 한국경제의 압축적 고도성장을 견인한 동력이었다. 이에 기반해 중견ㆍ중소 기업의 근로자들은 대거 중산층에 편입됐고 경제의 주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1997년을 기점으로 와해됐고 근로 중산층의 규모도 점차 축소됐다. 그 자리는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들로 대체됐다.
장시간 근로와 연공형 임금체계도 풀어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시장의 수요변동에 적응이 필요한 경우 인력을 통한 방식보다 노동시간 및 임금을 통한 조정을 선택해 왔다. 그 결과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했고, 일자리는 가정 내 주 근로자에게 집중됐으며, 가계의 현금수요를 반영한 연공형 임금시스템이 정착됐다. 이 역시 고성장시대의 모델로 한국기업 경쟁력의 주요한 기반이 됐으나 외환위기 이후 효과가 약화됐다.
위기의 노동시장 앞에 선 우리의 과제는 7.2% 밖에 되지 않는 질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 근로시간의 사회적 배분, 임금시스템의 합리화 등의 고차원 퍼즐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하는 일이 우선이며, 이 과정에 노사정의 이해관계자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 핵심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노동시장의 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또 다른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며 노동계의 체제 이탈만을 부추길 뿐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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