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예약자 명부·결제 내역 등 확보, '연락책' 김춘식 행정관 역할 조사
조응천·비서관 엇갈린 주장 되풀이, 진술 통해 결정적 단서 잡기 힘들 듯
박근혜 정부 ‘숨은 실세’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59)씨는 과연 청와대 비서진, 행정관들과 모임을 가졌는가.
검찰이 4일 정씨 동향 보고서에서 ‘십상시’ 회동의 장소로 지목된 서울 강남의 J 중식당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이 회합의 실체가 밝혀질 것인지가 검찰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가 문제의 문건에 대해 “찌라시 수준에 불과한 동향 보고서”라며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에서 검찰이 얼마나 물증을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1월 작성, 보고한 정윤회 문건은 ‘정씨가 청와대 핵심 비서관 3인방 등과 정기적으로 만났으며 2013년 송년모임에서는 정보지 등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이 곧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을 유포할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와대 비서관 및 행정관 등은 이 문건내용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해 “보도내용이 허위이다”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는 허위보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첫 수순으로 ‘정기 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검찰이 J 식당을 발 빠르게 압수수색하고 식당 폐쇄회로(CC)TV나 예약자 명부, 결제 내역 등을 확보한 것은 모임의 증거를 잡기 위한 기초인 셈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의 8명 고소인 중에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나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핵심 3인방이 아닌 김춘식 행정관을 선택해 부른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사람(고소인)을 불러 조사할 이유는 없고 팩트(사실)를 확인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불렀다. (문건에 김 행정관이) 연락책으로 기재돼 있다고 보도됐다”고 설명했다. 문건대로 김 행정관이 약속날짜를 잡아 예약하고 연락하는 역할을 했다면 모임 여부에 대해 진술할 수 있는 핵심 인물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김 행정관의 통신내역도 살펴볼 예정인데, 역시 십상시 멤버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을 것이라는 전제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문건의 진위 파악에 난관도 예상된다. 일단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진술로 증거가 확보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 경정은 문건내용이 사실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참석자들로 지목된 비서관 등은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또 식당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녹화된 CCTV 기록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낮고, 해당 식당이 예약 장부를 장기간 보관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보통 CCTV 영상 보관기간은 3개월이며, J 식당 건물 관계자는 “5일 가량 동영상을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회동의 윤곽을 포착하는 데에 가장 도움이 될만한 것은 휴대폰 위치 추적과 통화내역 추적이다. 또는 문건을 만든 박 경정이 모임이 있었다고 지목한 날짜에 대한 진술을 먼저 확보하고, 참석한 이들이 그 날짜에 다른 곳에 있었다는 알리바이 등을 조사하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모임의 존재를 확인한다 해도 모든 난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김 실장 교체설을 퍼뜨리라고 하는 등 국정 개입을 의논했는지는 별도로 밝혀내야 한다. 모임 자체의 은밀성을 고려한다면 대화 내용이 문서로 남겨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데 회합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이들이 입을 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불어 문건 내용대로 올해 상반기 정보지를 통해 김 실장 사퇴설이 유포된 과정도 검찰이 살펴봐야 할 지점이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나 박 대통령 측근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은 검찰에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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