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추첨일 전날에야 "중복 땐 합격 취소" 공문, 2곳 지원 부모 부랴부랴 취소 전화
"기회 줄고 혼란만 가중" 원성 커져
서울 서초구에 사는 맞벌이 주부 김모(38)씨는 나군에 속한 사립유치원(5일 추첨) 두 곳에 원서를 넣었다가 4일 급히 하나를 취소했다. 시교육청이 일선 유치원에 ‘중복지원ㆍ등록한 유아는 합격이 취소된다’는 공문을 3일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가ㆍ나ㆍ다 각 군별로 한 곳씩만 지원하게 했지만 집 주변의 유치원 두 곳 모두 나군으로 분류돼 있어 오히려 이전보다 지원 기회가 줄었다”며 억울해했다. 다른 군에 속한 유치원은 집에서 멀어 직장생활을 하는 김씨가 5세 아들을 출퇴근하면서 데려다 주거나 오기가 어렵고, 지원한 나군의 유치원은 원아 13명 모집에 150명 넘게 몰려 추첨 합격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 그는 “월 100만원씩 하는 영어유치원이라도 보내야 할 판”이라며 “어설픈 정책으로 학부모ㆍ아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주먹구구식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안으로 이번엔 유치원 지원을 취소하는 소동이 일고 있다. 시교육청은 앞서 사립유치원을 가군(추첨일 4일), 나군(5일), 다군(10일), 공립유치원은 가군(10일)과 나군(12일)으로 나눠 추첨일마다 한 곳씩 네 곳까지만 유치원에 지원하게 한 ‘2015학년도 유치원 원아모집 방법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중복지원을 막을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첫 추첨일인 4일 하루 전에야 ‘중복지원자는 합격 취소’라는 공문을 보낸 것이다. 당장 이날 학부모들의 중복지원 취소가 이어지면서 강서ㆍ송파ㆍ서초 등 수요가 많은 유치원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소동을 빚었다. 이들 지역의 한 유치원 관계자는 “지원 취소를 문의하는 학부모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치원이 추첨 지침을 따르지 않아 시교육청 말만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나타났다. 박모(39)씨는 이날 가군으로 분류된 유치원에 지원하려 했으나 “모집이 끝났다”는 소리를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유치원은 “지난달 말 입학설명회 때 추첨도 마쳤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박씨는 부랴부랴 다른 유치원을 알아봐야 했다. 그는 “시교육청의 안내만 믿었던 학부모들은 뭐가 되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시교육청은 중복지원을 거르기 위해 유치원에 15일까지 지원한 유아의 성명과 생년월일, 보호자 명단을 작성해 제출하도록 했지만 얼마나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지원횟수 제한으로 원아모집에 어려움을 겪게 된 도봉구ㆍ동작구 등 구도심 지역 유치원은 협조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나군에 속한 한 유치원 관계자는 “명단을 제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날 “중복지원을 이유로 유치원 입학을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의 말도 혼선을 부추기고 있다. 시교육청 이근표 교육정책국장은 “유아교육법에 입학취소와 관련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지 교육청 권한 밖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했으나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엇갈린 의견을 내놓으면서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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