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 격화가 배경이었던 ‘정여립 사건’
‘정윤회 문건’도 권력투쟁 양상 드러내
결국 권력핵심과 주변에 손실 집중될 것
조선 선조 22년(1589년)에 일어난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과 그 처리 과정인 기축옥사(己丑獄事)는 아직까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그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수제자로 꼽힐 정도로 재주가 뛰어났지만 관운은 약했다. 1584년 홍문관 수찬(修撰)을 끝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나 전주로 낙향한 후 비밀결사인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면서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조선 중기 신분질서와 동떨어진 탈계급적 인식과 민간에 참언(讒言)으로 떠돌던 ‘망이흥정설(亡李興鄭說)’ 등에 힘입어 대동계는 급속히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런 사실이 조정에 보고되고, 관군의 토벌이 본격화하자 정여립은 아들과 함께 진안으로 달아났다가 동반자살했다. 이로써 모반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정여립과의 내통ㆍ동조를 이유로 1,000여명이 희생되는 대규모 옥사가 빚어졌다.
이런 통설에는 적잖은 의문이 따른다. 당장 기축옥사의 도화선인 정여립 모반사건, 특히 대동계의 실체가 흐릿하다. 황해도에서 시작돼 남쪽으로 이어진 관군의 토벌에 변변히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일거에 허물어졌다. 사민평등(四民平等)의 대동사상으로 정신무장을 하고, 평소 무술수련으로 거사를 준비했다는 전국적 비밀결사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정여립 모반사건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끊임없이 지적됐다. 물론 이 또한 구체적 조작주체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엇갈려 있다. 당시 동인과 서인이 죽기살기로 벌였던 당쟁(黨爭)을 배경으로 든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한편으로 ‘실패한 혁명’ 시각을 뒷받침할 만한 혁명성도 정여립의 언행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요즘으로 치면 ‘공소사실’이나 고문에 의한 자백으로 ‘시국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는 어렵다. 사건의 실체가 이렇게 흐린데도 결과는 참혹했으니, 치열했던 당쟁의 실상만 드러냈다.
400년이 더 된 옛날 일을 새삼스럽게 들추는 것은 최근의 ‘정윤회 문건’ 파문이 부른 기시감(旣視感) 때문이다. ‘망이흥정설’이라는 참언이 정여립 사건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듯, 이번 파동도 이른바 ‘찌라시’에서 비롯했다. 참언과 찌라시는 누군가가 남들이 쉽사리 알 수 없는 분명한 목적에서 만들고 퍼뜨린 소문이란 점에서 흡사하다. 애초에 박관천 경정이 정씨의 동향을 조사해 보고한 것이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퍼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임설 때문이었다. 또한 그가 작성한 문건을 두고도 청와대와 정씨는 찌라시로 보았다. 현재는 그 찌라시의 존재와 작성, 공개 경위 등에 숨어있는 복잡한 노림 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옛 참언과 지금의 찌라시는 왕과 대통령이라는 최고권력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기 위한 권력투쟁의 산물이란 점에서도 같다. 문건은 처음 정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에 대한 김 실장의 견제 모습을 담은 듯했지만, 며칠 사이에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정씨 측의 권력투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권력자의 마음을 사고, 권력 행사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돌리고, 심지어 권력자의 판단을 흐리려는 권력주변의 행태는 긴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왕조 시대와 달리 야당의 권력 견제나 권력 무력화 의도까지 덧붙을 수 있다. 찌라시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가 더욱 어려운 셈이다.
사건이 복잡하고 어지러울수록 최종 수혜자를 따지면 단순한 구도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수혜자조차 불분명하다. 정여립 사건으로 동인을 대거 제거해 잠시 권세를 쥔 듯하던 서인은 이내 동인의 반격을 받아 임진왜란 직전에는 다시 열세에 처했다. 사건 관련자들의 목숨을 쥐고 흔들었던 송강(松江) 정철(鄭澈)도 오래잖아 유배됐다. 보도된 정황에 따르면 박 회장은 더 이상 줄을 대봐야 소용없다는 판단이 설 정도로 많이 잃었다. 반면 소문으로만 떠돌던 국정개입 정황 일부가 드러남으로써 정씨는 제법 얻은 편이지만 오래가기 어렵다. 김 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정치생명도 온전하기 어렵고,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 실추도 확연하다. 야당은 잃을 게 없다지만, 따로 얻을 것도 없다.
현재의 논란은 관련자들을 정리해야만 매듭될 수 있다. 대통령의 결단이 관건인 셈이고,
그 시점이 궁금하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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