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들 임대소득 과세 부담… 반전세 계약 후 월세는 신고 안 해
전셋값, 매매가 턱밑까지 오르자 세입자도 감당 못해 월세 수용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아파트의 전용면적 79㎡를 보유한 김모씨는 지난 달 재계약을 앞두고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4억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2년 전 2억4,000만원에 계약을 했던 세입자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며 이사를 결정했다. 그러자 김씨는 전세 4억원 혹은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면 계약을 하겠다고 공인중개소에 매물을 내놨다. 드물게 나온 전세 물량이라 문의가 쇄도했지만 보증금이 너무 높아 선뜻 거래에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한달 가까이 협상을 한 끝에 김씨는 결국 보증금 3억원, 월세 30만원에 최종 계약을 했다.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월세 30만원은 빼고 3억원 전세 계약으로 신고를 하는 것이다. 임대소득 과세에 부담을 느낀 김씨가 제안을 했고, 월세 소득공제 대상(연소득 7,000만원 이하)이 아닌 세입자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계약을 중개한 잠원동의 공인중개소 대표 정모씨는 “대형 아파트들도 20만~30만원씩 월세를 붙여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10건 중 7~8건은 월세 계약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공릉동의 다가구 주택에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올 8월에 4,000만원 전세에서 보증금 2,000만원, 월세 20만원의 반전세로 바꿔 계약을 했다. 집주인이 임대로 내놓은 12가구 모두 앞으로는 월세 형태로만 계약할 예정이라는 방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살고 있는 건물의 세입자들은 최근 몇 달 사이 월세를 최소 15만원, 많게는 40만원까지 내는 식으로 재계약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박씨는 “최소한 시중 금리보다 두 배 이상 수익률이 나오려면 월세를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며 “이런 원룸 건물들의 경우엔 전세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 임대차 시장이 전세 대신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다세대·다가구에 많았던 월세가 아파트에서도 보편적인 임대 형태로 확산되면서 전세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월세 거주자가 전세보다 많고, 거래 비중도 월세가 전세를 앞지른, 이른바 ‘월세 시대’가 본격 도래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3일 전국에서 유일하게 실시간 거래 추이를 공개하는 서울시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1일까지 거래된 월세 거래는 14만6,227건으로 이미 작년 연간 수치(14만4,868건)를 넘어섰다. 반면 같은 기간 전세 거래는 24만1,011건으로 작년 합계(25만3,262건)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월세의 경우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거래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올 들어 임대소득 과세 등의 여파로 계약 과정에서 추가된 보증부 월세 등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월세가 누락된 사례가 더 늘어난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무보증 월세는 아예 집계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보증부 월세의 경우 보증금을 떼일 우려 등으로 신고를 하지만 무보증 월세는 확정일자 없이도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어 집계에서 누락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확정일자로 따지면 임대시장 거래비중이 월세 40%, 전세 60% 정도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미 월세가 전세 비중을 훨씬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조만간 발표할 ‘2014년 주거실태 조사’에서도 월세 가구수는 전세를 처음으로 앞지를 전망이다. 2012년 조사 결과 전국 월세는 368만4,820가구로 전세(383만4,565가구)보다 14만9,745가구, 주거형태별 거주 비율로는 0.2포인트 적은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런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데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두 차례 기준 금리가 인하된 데다 전셋값이 매매가격의 턱밑까지 추격한 것이 도화선이 되면서 월세로의 전환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세입자들도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월세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봇물 터지듯 월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권일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경제 구조변화에 따라 전세가 줄고 월세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올 들어 여러 변수들이 맞아 떨어진 데다 쏠림 현상이 심한 국내 부동산 시장의 특성 등이 반영되면서 월세 시대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번 속도가 붙은 이상 당분간 이 같은 분위기에 제동이 걸리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전세 물량은 갈수록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데다 내년에는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용훈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임대인들은 금융 투자보다 월세임대를 통한 수익이 더 높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기존 전세물건도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박나연인턴기자(경희대 호텔관광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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