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소수파 노무현ㆍ박근혜 대통령
386과 십상시 같은 측근 잡음도 유사
파국적 실패 막으려면 비선 털어 내야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해온 일부 청와대 비서관과 측근들을 가리켜 ‘십상시(十常侍)’라는 말이 나도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삼국지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멋대로 국정을 농단해 기울어 가던 나라를 끝내 무너뜨린 열명의 환관 무리를 말한다. 그러니 요즘의 십상시란 말에는 한 줌의 보잘것없는 내시 같은 무리가 사사로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냉소와 함께, 그들에 둘러싸인 박 대통령도 세상 몰랐던 영제보다 나을 것이 뭐 있느냐는 야유가 담긴 셈이다.
박 대통령과 오랜 정치적 고락을 함께 하며 마침내 ‘개국공신’ 쯤이 된 측근들이니, 환관 나부랭이라는 비유는 모욕적이다. 멀쩡한 사람을 성 불구자로 만든 건 그렇다 쳐도, 누구보다 대통령의 의중을 깊이 헤아려 온 자신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비난도 억울할 것이다. 대통령의 답답함이야 오죽하겠는가. 글로벌 불황기에 취임해 무엇보다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써왔다. 노인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의료보험을 실현했고, 난공불락이었던 공무원연금 개혁까지 추진 중이다. 그런데도 격려는커녕 야유라니, 울화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청와대를 ‘찌라시’가 난무하는 야담(野談)의 무대로 전락시킨 책임은 다름아닌 대통령에게 있다.
지금 박 대통령 주변에 십상시가 있다면, 과거 노무현 정부 땐 ‘청와대386’이 있었다.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386세대’와 달리, 당시 청와대386은 80년대 학생운동권 중에서 정치에 입문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핵심 실무를 맡았던 소수 참모그룹을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부상하기 전부터 서클 선후배처럼 격의 없이 어울렸던 그들이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해 ‘청와대386’을 형성했던 것이다.
해일처럼 일어나 일약 권력의 정상에 올랐으나, 노 전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소수파였다. 전임 김영삼ㆍ김대중 대통령처럼 수십년간 일궈놓은 든든한 정치계파도 없었고, 고 김근태나 유시민씨 같은 학생 민주화운동의 정통파도 아니었다. 그러니 비록 진보 후보로 대통령이 됐음에도 진보진영의 기존 파워집단과 보이지 않는 권력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결국 청와대386은 기존 정치판에 반발해 오롯이 ‘노무현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전위대가 됐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비공식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인사에 개입해 노무현 정권을 결국 참담한 실패로 몰아 넣는 ‘폐족(廢族)의 우(愚)’를 저질렀다.
박 대통령도 정치적 소수파로 출발했기는 마찬가지다.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대중적 향수와 대구지역 기반 등 정치적 자산은 확고했지만, 3당 합당 이래 다양한 정파가 뒤섞인 한나라당ㆍ새누리당 내에서 결코 다수파가 될 수 없었다. 새누리당에서 박 대통령의 취약한 기반은 지금도 당 내 친박계의 불안정한 입지나, 때마다 불거지는 당ㆍ청 갈등 등에서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까지만 해도 ‘포용과 화합의 정치’를 내세웠다. 그 말대로 집권 초기 여권 내에서만이라도 적극적인 포용과 화합에 나서 세력기반을 확장할 기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오히려 당과 애써 거리를 두면서 오롯한 ‘박근혜 정치’를 구축하려는 듯한 배타성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인사가 그랬다. 새누리당 인사를 전면 배제한 1기 조각은 물론이거니와, 그 후 주요 인사도 일방통행식 ‘불통인사’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수첩인사’같은 말이 돌았고, 점차 주요 정부보직 인선이 공당(公黨) 시스템을 배제한 채 ‘7인회’나 ‘만만회’, 또는 ‘문고리 권력’이나 이번에 부각된 십상시에 휘둘리고 있다는 의구심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어찌 보면 새누리당 내에 믿을 만한 동지 집단이 취약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정계입문 이래 고락을 함께 하며 수족처럼 자신을 보좌해온 측근 비선그룹이 훨씬 믿을 만한 파트너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십상시든 청와대386이든, 대통령 측근 비선그룹의 지나친 국정 및 인사 개입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그들이 정치적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사적 집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비선 집단이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권력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뜻밖의 참담한 파국을 피하려면 이번 정윤회 파문을 계기로 정무 스타일을 크게 바꿔야 옳다. 우선 더 이상 십상시 같은 말이 돌지 않도록 비선부터 정비하고, 당과 정부라는 공적 시스템을 더 많이 활용하는 정치를 모색해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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