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모임에 보안업체를 운영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참석했다. 왜 그리 얼굴 보기 힘드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요즘 학교에 가면 점점 보기 힘든 게 무엇인 지 아니?” 다들 엉뚱한 대답을 하자 그 친구는 “폐쇄회로(CC)TV”라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초중고교에 각종 사고 예방 등 보안을 위해 설치한 CCTV가 정부의 예산 축소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학교에 설치된 CCTV들도 오래 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화소가 떨어지는 구형이어서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심지어 새로 교체한 학교들도 다룰 줄 아는 운영요원이 없어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한다.
그 바람에 보안업체들도 힘들어 죽을 지경이란다. 나름 시장을 형성했던 학교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빠져버리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는 것. 그렇다 보니 다른 공공분야에서 보안 사업을 발주하면 관련 업체가 수백 개씩 몰려 든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것은 업체들이 써낸 최고가와 최저가의 입찰 가격 차이가 불과 10만원 미만이다. 친구는 그렇게 저가 경쟁을 벌여야 할 만큼 먹고 살기 힘들어 졌다는 반증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보안업계의 어려움을 떠나 CCTV 문제는 학교 안전문제로 이어져 심각하다. 교육부는 서울 영등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여학생을 납치 강간한 김수철 사건 이후 CCTV 설치 의무화 등 보완책을 2012년에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올해 교육부 국정감사 때 새정치민주연합 윤관석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어둠 속에서도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적외선 CCTV를 50% 이상 보유한 학교는 전체 학교의 45%인 758개교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단체의 통합관제센터와 연계해 학교 주변의 위험 상황을 CCTV로 항상 살펴볼 수 있는 학교는 36%인 607개교 뿐이다.
CCTV가 설치된 학교라고 안심하긴 이르다. 윤 의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ㆍ중ㆍ고교에 설치된 CCTV 15만7,000여대 가운데 77%인 12만여대는 화소수가 100만 화소 미만이다. 스마트폰에 부착된 디지털 카메라도 800만화소인 시대에 100만 화소 CCTV라니. 사람 얼굴은커녕 자동차 번호판 식별도 어렵다. 누구나 갖고 있는 스마트폰보다도 못한 CCTV를 학교에 설치해놓고 학생안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고 기만이다.
일선 학교들은 예산 부족을 탓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올해 교육부의 시도별 영상정보처리기 설치 예산은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물론 정부도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안다. 유아들을 위해 누리과정 예산도 늘려야 하고, 창조경제를 위해 소프트웨어 교육 예산도 마련해야 한다. 공무원 인건비도 줘야 하고, 각종 복지지출도 늘려야 한다. 그렇다 보니 부족한 재정에서 CCTV 지원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CCTV에 사용할 예산은 없을까. 국회에서 확정한 올해 교육부 예산은 52조2,48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217억원 늘어났다. 교육부가 요청한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8,841억원 증가한 55조1,322억원이다. 아직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 심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가운데 얼마가 확정될 지는 모른다.
그렇다 해도 한 해 7조원 이상을 사용하는 서울교육청이 CCTV 교체에 배정한 예산이 6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를 배로 늘려도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CCTV 교체나 신설을 위한 비용을 교육부 예산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생각이다. 수백~수천억 원이 드는 것도 아니고, CCTV 확충에 필요한 돈 정도는 의지만 있으면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이것 만큼은 지켜야겠다는 정부의 원칙이 확고하면 없는 예산에서도 필요한 부분을 지원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예산이 남아 돌아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매년 예산 심의 때마다 춤 추는 쪽지 예산을 보면 도대체 국정 의지가 존재하는 지 의문이다. 단언컨대 예산은 돈이 아니라 철학이자 의지다. 정부가 강조하는 '안전한 사회'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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