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 장기화로 경기 전반 빨간불… 日·EU도 추가 돈 풀기 나설 전망
그간 우리 경제에 유가하락은 예외 없이 반가운 뉴스였다. 에너지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에서 저유가는 곧 비용절감, 그리고 물가 하락을 뜻했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이 180도 달라졌다. 유가가 떨어지는 것을, 그에 따라서 물가가 낮아지는 것을 결코 달가워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경기둔화와 더불어 저물가가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의 유가 하락은 오히려 디플레이션 심화의 공포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벗어날 방법도 마땅치 않아 우려는 더욱 커지는 형국이다.
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5.56포인트 떨어진 1,965.22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ㆍ소비지표 부진도 악재였지만 무엇보다 지난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무산에 따른 국제유가 급락의 여파가 컸다. 유가 급락이 달러화 강세를 부추기며 원ㆍ달러 환율도 5.6원 급등(원화가치 급락)한 1,113.5원에 마감했다. 저유가가 글로벌 경기의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각국의 돈 풀기 경쟁(달러 강세 요인)만 부추길 거란 전망이 작용한 결과다.
수요 부진에 더해 물가 하락을 부추기는 외부 공급 요인까지 가세를 하면서 국내 디플레 우려는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벌써 24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내년에도 담뱃값 인상 요인을 제외하면 2%를 넘기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실제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3년9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생산자물가는 일정 기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앞으로도 소비자물가는 더 낮아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물가가 장기화되면 경제 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미뤄 경기 전체가 퇴보하는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준금리가 이미 역대 최저(2.0%)로 낮아진 상황에서 물가당국인 한은은 “금리라도 더 낮춰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과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을 더 풀 경우 효과는 없이 부작용만 키울 것이다”는 반론 사이에서 난감한 고민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어떤 정책적 대응도 유가발 저물가를 당해내기는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최근 향후 3개월~1년간 유가전망치를 배럴당 6~9.5달러씩 일제히 내리는 등 국제유가는 당분간 더 떨어질 거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세계적인 디플레 공포도 커지고 있다. 진작부터 디플레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유럽(EU)과 일본은 저유가 충격으로 더 강력한 돈 풀기 정책에 나설 수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저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유가하락이 지속될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이 국채매입 등 공격적인 양적완화 조치를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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