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청와대문건 유출 사건에 대해 사흘 만에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말했다. 또한 “청와대에는 시중에 떠도는 수많은 루머들이 들어오지만 그것들이 다 현실에 맞는 것도 아니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로 일벌백계 하겠지만 결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은 없다는 게 발언의 요지인 셈이다. 그러면서 검찰의 조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검찰 수사가 문건 유출에 초점이 맞춰지도록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준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루머에 불과한 얘기로 치부했다. 청와대가 문건 보도 직후 “찌라시에 불과하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인 셈이다. 하지만 공직자들에 대한 전방위 감찰 활동을 하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문건이 루머나 찌라시 수준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그런 루머나 찌라시 모음 문건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공공기록물’이라고 자인한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비선 측근들이 국정에 개입한 내용을 담은 문건을 찌라시라고 단정한 근거도 석연찮다. 구체적 행위와 정황이 상세히 적시됐는데도 내용을 면밀히 확인하지도 않았다. 다만 당사자들로부터 “아니다”라는 답변만 듣고 덮었다니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유출자 색출을 강력히 주문하면서도 청와대가 그 동안 별다른 조치 없이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점도 유감스럽다. 청와대는 대외비로 분류된 다량의 문서 유출을 막지 못한 것은 물론 이후 수개월간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쉬쉬하는데 급급했다. 누가, 어떤 문건을, 얼마나 빼돌렸는지 조차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내부 기강이 엉망일 뿐 아니라 보안체계에 심각한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문건 유출 사건의 배경이다. 청와대 내부의 권력 암투의 과정에서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파문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선 정윤회씨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의 갈등에서 불거졌다는 말이 무성하다. 박씨 측이 정씨와 청와대의 ‘비서 3인방’을 견제하기 위해 뒷조사를 시켰고, 그 과정에서 문건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정씨 측이 박씨를 미행했다는 언론보도와 10월에 박씨의 육사동기인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갑작스런 경질 사태도 두 사람간의 갈등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누가 문건을 유출했느냐는 것 보다 그 이면에 담긴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문고리 3인방’이니 ‘비선 권력’이니 하는 말이 왜 나오는지, 대통령 동생의 이름이 왜 오르내리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측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인사 스타일과 소통 능력, 국정운영 방식에 문제가 없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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