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구진 초음파 집속 장치 개발
자연적으로는 절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국내 연구진이 인공적으로 혼합하는데 성공했다. 화학성분 첨가 없이 수성과 유성 성분을 섞을 수 있어 상용화하면 인체 친화적인 화장품과 의약품 제조 등에 널리 활용할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1일 “신기능재료표준센터가 실온 대기 중 환경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기름을 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의 입자 형태로 바꿔 물 속에 분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를 주도한 추민철 책임연구원은 “물과 기름을 실온에서 계면활성제를 전혀 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섞을 수 있는 현존 유일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올 4월 화장품 성분인 세티올 오일과 천연 올리브 오일에 초음파를 가해 100㎚ 안팎의 미세 입자로 분해한 뒤 각각 증류수에 분산시켰다. 이후 8개월째인 지금까지 각 기름 입자는 증류수 속에 균일하게 섞여 있다. 추 연구원은 “40도에서 약 한달 간 혼합 상태를 유지하면 안정성이 있다고 보는 국제기준을 이미 충족했다”고 말했다.
초음파로 물과 기름을 섞으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기존 장치로는 기름을 마이크로미터(1㎛=100만분의 1m) 단위 입자로밖에 분해하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 서로 달라붙어 물 위로 떠오르면서 수일 안에 다시 물과 분리됐다. 연구팀은 고주파 에너지를 집중시켜 작고 균일하게 분해된 입자를 물 속에 고루 분산시키는 ‘초음파 집속 장치’를 자체 개발해 이 한계를 넘었다. 추 연구원은 “입자가 아주 작으면 분자가 자유롭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현상(브라운 운동)이 가벼워서 떠오르려는 움직임보다 우세해지며, 입자 크기가 균일하면 서로 응집하려는 경향이 줄어든다”고 혼합의 원리를 설명했다.
화장품이나 의약품을 제조할 때 물과 기름 성분을 섞는 기술은 필수다. 지금은 대부분 친수성(물)과 소수성(기름)을 한번에 붙잡아두는 계면활성제를 쓴다. 천연 계면활성제라 해도 화학공정을 거쳐 만들기 때문에 인체 유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계면활성제 안 쓰는 혼합 기술 개발에 과학자들이 매달려 온 이유다. 연구팀은 국내 한 화장품 기업과 함께 이 기술을 자외선차단제 제조에 활용하는 방안을 타진 중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