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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악기와 친구하기

입력
2014.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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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동안 정들었던 피아노를 팔았다. 피아노를 가져가는 기사님이 이렇게 오래된 피아노는 대개 수리를 해서 해외로 수출을 하는데, 아직도 남은 피아노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웃었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를 그만 둬서 잘 치지는 못한다. 가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나 ‘소나티네’ 같은 곡을 치는데 반복하다 보니 익숙해져 있을 뿐, 누구에게 들려줄만한 실력은 아니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다 보면 마음의 평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피아노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종자돈을 모아 사 주신 것이었다. 피아노가 처음 집에 들어오던 날 나보다도 기뻐했던 어머니 모습이 생생해서, 결혼을 할 때에도 이사를 다닐 때에도 피아노만은 꼭 끌고 다녔다. 그러다 내 아이가 6살이 될 때 피아노를 물려주게 되었다. 내가 쓰던 악기를 내 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연주한다는 게 기뻤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소음걱정이 컸다. 페달을 밟아 음량을 줄이고 치는 일이 잦았고, 오래되다 보니 조율을 해도 썩 좋아지지 않는 음정에 아이는 불만스러워했다. 점차 검정색 구닥다리 피아노는 아이 방 한쪽에서 짐을 올려놓는 선반이 되어가고 급기야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결국 피아노를 치우게 되었다. 방은 훤해졌지만 허전함이 커졌다.

내 아이는 7년 째 학교 앞 학원에서 피아노를 치고 온다. 다른 악기들을 권해보기도 했지만 여러 악기 가운데 유독 피아노만 좋아했다. 아이는 피아노를 전공으로 할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혹시라도 내년에 중학생이 되면 공부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 두게 될까봐, 아이도 나도 전전긍긍이다.

아이에게 피아노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만 두고 싶어 할 때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내가 학원 선생님께 부탁한 것은 ‘진도’가 아니라 ‘휴식’이었다. ‘피아노를 잘 치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피아노와 친구하기’가 중요했다. 그래서 힘들어할 때는 치고 싶은 곡을 맘껏 치게 해주거나, 건반도 누르기 싫다면 피아노 옆에서 만화라도 보게 해주라고 부탁했었다. 바람대로 피아노 학원은 아이에게 아주 편한 쉼터가 되어주었다.

한번은 아이가 피아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어떤 음인지를 정확히 맞추어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절대음고’의 천부적 재능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절대음고를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것이 조기 음악교육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특히 7살 이전에 피아노를 비롯한 음악교육이 절대음고를 키우고, 실제 이처럼 음악교육을 시작한 사람의 뇌용량이 일반인에 비해 11.6%가 더 크다는 연구발표도 있었다.

음악이 아이들의 정서와 두뇌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자라면서 아이들은 점차 악기와 친구가 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입시위주의 과도한 학업 경쟁 속에 전공으로 할 것도 아니면서 악기를 배운 다는 것은, 공부하는 시간을 아깝게 할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첼리스트 장한나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음악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시향을 만들어 협연에 나서는 등, 전공과 꿈의 실현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진행형이 중요하다.

이제 방과 후 40여분 치는 피아노는 아이의 익숙한 일상이다. 아이는 피아노를 치면 막혔던 기분이 뻥 뚫리고, 피아노를 치는 동안은 슬픈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음악이 갖는 치유의 힘을 톡톡히 받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또 하나의 악기를 다루고 싶다고 한다. 일렉트로닉 기타를 배워서 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면 나는 그 악기를 배우게 해주고 싶다. 음악이 주는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멋진 일인지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음악을 듣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남이 하는 것을 전달 받는 행위도 중요 하지만 직접 참여는 더 의미 있고 윤택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리고 악기라고 하면 피아노만 떠올릴 것은 아니다. 하모니카든 단소든 기타든 오르골이든 직접연주를 통해 아주 오래 동안 음악과 사귈 수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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