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수출, 투자, 산업생산, 생산성 등 주요 경제지표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 물가하락세는 디플레 조짐을 보인다. 따라서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혁신이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는 지역별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단두대에 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규제완화라는 신자유주의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경제혁신 방향은 규제를 풀거나 돈을 푸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발전모델을 정립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현재의 한국경제가 당면한 위기는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기존의 발전국가 모델이 해체되기 시작하고 신자유주의 모델이 도입되어 한국경제의 발전모델은 하이브리드화 되었다. 국가가 물러난 자리를 시장이 차지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대됨과 동시에 경제적 자유주의도 강화되었다. 1997년 이후 특히 금융시장의 규제완화가 크게 진전되었다.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경제적 자유 지수’(Economic Freedom Index)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금융시장은 미국보다 더 자유화되어 있다. 자본 자유화도 미국보다 훨씬 더 진전되어 있다.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재벌체제에 주주자본주의적 요소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체제가 나타났다. 대-중소기업간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 재벌체제의 나쁜 측면과 경제를 불안정하게 하고 기업의 장기투자를 저해하는 단기주의를 부추기는 주주자본주의의 나쁜 측면이 결합되어 성장과 분배 모두를 악화시켰다. 주주자본주의 요소가 강화됨에 따라 기업 경영이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기업은 장기투자를 통한 기업의 성장보다는 수익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주가를 높이며 배당을 늘이는데 주력하였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시적 구조조정을 하고 정규직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확대하였다.
이러한 경영방식이 도입된 까닭에 기업의 투자는 둔화되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여기에 대-중소기업간의 생산성 격차와 임금 격차가 확대됨에 따라 경제구조가 양극화되었다. 대-중소기업간의 양극화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잉여를 단가인하를 통해 흡수함으로써 더욱 심화되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혁신역량 약화와 저임금과 저투자를 초래하였다.
한편, 그 동안의 경제성장 방식은 기본적으로 추격형 성장이었다. 추격형 성장은 기본적으로 모방에 기초한 성장이다. 이러한 추격형 성장의 잠재력은 이제 거의 소진되었다. 창조적 파괴를 통한 선도형 성장으로 가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경제 혁신의 방향은 새로운 발전모델의 립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금융 자유화, 자본 자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감세,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패러다임을 기각해야 한다. 고삐 풀린 자유시장경제와 주주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잉여를 흡수하는 산업구조를 청산해야 한다. 금융규제, 자본통제,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flexicurity), 증세, 큰 정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조정시장경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공생관계 형성 등, 이러한 요소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대불황은 이러한 새로운 발전모델의 정립 없이는 한국경제 발전이 지속불가능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만약 한국경제가 이러한 새로운 발전모델을 정립하지 못한다면 장기 침체에 빠져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지 모른다. 저성장, 저생산성, 실질임금 정체, 디플레 양상 등 당면한 한국경제 상황은 이미 일본형 장기불황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발전모델을 실현해야 장기 불황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발전모델을 정립하려면 사회적 대타협이 필수적이다. 서로 다른 이해와 욕구와 목표를 가진 경제주체간, 노-사-정-민간, 보수와 진보간에 상생의 영역을 찾아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공유하는 비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경제혁신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한다는 공통의 목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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