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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연의 사이아트] 인터스텔라, 아직 남은 이야기

입력
2014.11.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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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전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증오와 불신은 서로를 인식할 수 없게 해

마음을 열고 서로 사랑해야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영화 인터스텔라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 주말 현재 700만 관객이 이 영화를 본 걸로 집계됐다. 매스컴에서도 인터스텔라에 관한 뉴스와 기사로 넘쳐나고 여기저기 실린 기고문들로 더 이상 다룰 소재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어쩌랴! 필자가 맡고 있는 이 컬럼은 과학과 예술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두 분야의 경계를 탐험하는 것 아닌가. (컬럼 제목도 과학과 예술의 합성어 ‘사이 아트’다.) 인터스텔라 이야기는 과학과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를 다루지 않고 어찌 과학과 예술을 논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이번 글은 일종의 의무방어전 같은 거다. 그래야 필자도 떳떳이 과학과 예술 융합 분야의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으니까.

일단 영화를 보기로 했다. 필자도 영화를 좋아한다. 1년에 40번 넘게 영화관에 가니, 영화광은 아니더라도 영화팬이라 하기엔 무리가 없다. 그런데 너무 기대가 컸나 보다. 남들은 상영시간 3시간이 1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하는데, 세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오히려 이 영화보다 더 과학적이면서도 재미있었던 SF영화도 꽤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지금은 없어진 미군방송에서 방영되었던 미드 ‘스타트랙’은 아직도 내 의식구조 깊숙이 박혀있다. 어차피 내 실력으론 스타트랙에 나오는 우주선이나 순간 이동장치 같은 것을 연구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었지만, 영어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시청했던 이 SF시리즈는 ‘과학자는 위대한 탐험가’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스필버그 감독의 대표작인 SF영화 ‘미지와의 조우’. 이 영화를 보면서 우주는 단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이란 것을 깨달았고, 작년에 봤던 ‘그래비티’는 가장 과학적이면서 가장 인간적인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외계인이 전해준 설계도로 우주선을 제작하고 은하계 저 넘어 날아가는 ‘콘택’은 아마도 인터스텔라와 가장 비슷한 영화일 것이다. 여기 출연한 조디 포스터는 전형적인 과학자보다 더 과학자처럼 연기해서 나중에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영화를 봤을 때 ‘아니, 왜 과학자가 영화에서 연기하지?’ 순간적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 이외에도 ‘스타게이트’, ‘스타워즈’, 그리고 요즘 즐겨보는 영국 SF드라마시리즈 ‘닥터 후’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수준급 영화는 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는 나중에 두 어 차례 더 볼만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하나가 아직도 머리에 떠오른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시공간을 넘어서도 소통하고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 처한 여주인공의 말이다.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들 간에는 스마트폰으로 통화도 불가능하고 이메일도 주고 받을 수 없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물리적으로 단절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다. 은하계 저편으로 날아간 주인공 아버지는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현재는 지구의 현재와 다르다.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지구에 사는 딸에게 사랑을 통하여 우주의 비밀을 전해준다. 물론 영화에서는 SF영화답게 중력이라는 과학적인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중력이란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는 콘텐츠의 원동력은 딸을 향한 부성애와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란 것에 모든 관객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랑이 그렇게 강력하다면 사랑의 반대인 증오심도 그에 못지 않을 거다. 앞서 인용한 영화 대사를 180도 바꿔보자. “증오심과 불신은 우리 인간이 동일한 시공간에 있어도 소통하고 인지할 수 없게 합니다.”

영화관을 나와 동네 음식점에 들어갔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벽에 걸린 TV에 고정되어 있다. 마침 뉴스 시간이다. 뉴스는 온통 여당과 야당 간의 저주에 가까운 공방,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싸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에 관한 뉴스로 차있다.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우리는 ‘인터스텔라’라는 서로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화 인터스텔라는 이걸 해소하는 아주 쉽고 평범한 방법도 알려 준다. 마음을 열고 조금씩 서로 사랑하라.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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