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회피 노력" 사측 손 들어줘
"부당한 목적 정리해고 정당화" 비판
파업 참가자를 내쫓기 위한 문건을 작성하고 정리해고를 진행한 회사에게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내렸으나 법원이 이를 취소했다. 부당한 목적으로 정리해고를 기획해도 빠져나갈 길을 알려준 판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반정우)는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 KEC가 "정리해고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재심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KEC노조는 2010년 6월 노조 전임자 처우 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이후 사측은 경영위기 등을 이유로 2012년 2월 노조원 75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파업참가자의 회사 복귀 차단 등의 내용을 담은 사측의 '인력구조조정 로드맵' 문건이 작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함께 노조는 공장점거 주도?참여 노동자에게 각각 15점과 12점의 감점을 주도록 한 사측의 해고대상자 선정기준 등을 문제삼아 구제신청을 냈다. 노조의 반발로 75명에 대한 해고는 철회됐지만 사측의 문건작성과 정리해고에 대한 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2012년 11월 중노위는 노조원에게만 불이익을 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노조측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일단 재판부는 해당 문건이 파업참가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담고 있다고 인정하고 "실무자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정리해고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문건의 의도와 달리 사측이 임금 감액, 근로시간 단축 등 정리해고를 회피하려고 노력한 사정이 보인다"며 "사측이 해고 당시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공장점거 참여자에 대한 감점 부과에 대해서도 "불법 파업으로 회사에 손해를 가하고 형사처벌을 받은 것을 평가에서 제외한다면 성실히 근무한 근로자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노조 전임자 처우와 관련한 파업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고 공장점거도 사측에 재산피해를 발생시키고 시설관리권을 침해한 것으로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영중 서울변회 인권위원장은 "부당한 목적으로 정리해고를 기획하는 상당수 기업의 행태가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는 판결"이라며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 권리 구제를 위해 힘써야 할 법원이 오히려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여지를 키우고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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