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경종 3년(1723년), 환관(宦官) 박상검은 궁궐 내의 여우를 잡는다는 구실로 함정을 파 청휘문(임금과 동궁의 거처를 잇는 출입문)을 폐쇄하고 경종의 이복동생이자 왕세제(王世弟)인 연잉군의 임금 문안과 시선(視膳ㆍ임금의 진짓상을 살피는 일)을 막았다. 연잉군은 “임금 곁에 있는 악당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며 환관의 처벌을 요구했지만 경종은 말만 “그리 하마”하고는 박상검 등을 조사도 하지 않았다.
▦ 목숨이 위태롭다고 판단한 연잉군은 왕세제 자리를 내놓고 대궐 밖으로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다. 신하들의 상소로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환관과 궁인들이 작당해 불화를 일으킬 목적으로 두 사람의 접견을 막고, 연잉군 험담을 궐내에 퍼뜨렸다고 한다. 경종과 이간질해 연잉군을 제거하기 위한 소론(少論) 측의 사주가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년 뒤 경종의 급사로 연잉군은 왕위에 오른다. 그가 영조다. 박상검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다 능지처참돼 진실은 알 수 없으나 환관이 매개가 된 붕당 대립과 권력암투 냄새가 물씬 난다.
▦ 청와대 안팎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을 십상시(十常侍ㆍ중국 후한 말 국정을 농단한 10명의 환관)로 묘사한 ‘VIP 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 파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올 1월 작성된 청와대 내부 보고서는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인 정윤회씨가 십상시 멤버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씨가 지난해 송년 십상시 모임에서 ‘검찰 다 잡기’가 끝나는 올 초ㆍ중순 김기춘 비서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니 정보지ㆍ언론에 정보 유포를 지시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것이라는 게 청와대 해명이지만 지난해 연말 이후 적어도 서너 차례 보도된 김 실장 사퇴설 배후가 새삼 궁금해진다. 지난 3월 새누리당 초선의원들과의 모임에서 사퇴설이 화제에 오르자 김 실장은 “누가 소문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여의도 발(發)이라던데”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권력투쟁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이번 파문이 탕평 공약과 달리 좁은 인재 풀에 갇힌 결과는 아닌지. 영조는 모친의 미천한 신분, 경종 독살설, 노론소론 당쟁 등으로 정통성 위기와 취약한 기반 속에 즉위했으나 탕평 기용을 돌파구로 정치적 안정을 이뤘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