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시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씨(50)는 지난 6월말 농협 통장에 넣어둔 1억2,000만원이 자신도 모르게 인출되는 피해를 입었다. 돈은 텔레뱅킹을 통해 6월 26일부터 사흘간 41차례에 걸쳐 약 300만원씩 11개 금융회사의 15개 계좌로 나뉘어 이체된 뒤 모두 빠져나갔다. 금융당국과 경찰은 사기범들이 대포통장을 이용해 쪼개기 방식으로 해당계좌의 돈을 빼간 건 파악했지만, 사건 5개월이 지나도록 범인들의 윤곽은 물론이고, 이들이 어떻게 해당 계좌에 접근했는지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전자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씨 같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전화사기로 일컫는 보이스피싱을 비롯해 파밍(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금융사기), 스미싱(스마프폰 문자결제사기) 등 범죄 수법이 갈수록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이상규 의원(통합진보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자금융 피해규모는 2011년 502억에서 지난해 1,364억원으로 증가하더니 올해는 10월까지 이미 1,719억원에 달했다.
주목되는 건 이런 전자금융사기의 중심에 대포통장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포통장은 통장의 실사용자와 명의자가 다른 통장인데, 사기범들이 계좌이체 등을 위해 필수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대포통장이 금융범죄의 숙주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2012년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대포통장 과다발급 금융사를 점검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대포통장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고 있다. 연간 5만여개의 대포통장이 범죄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사기범들은 신용불량자나 노숙인들을 꼬드겨 통장을 만들게 한 후 사들이거나, 대출이 어려운 피해자들에게 신용등급을 올려 대출을 해주겠다고 유혹해 피해자 명의의 통장을 개설해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정 금융실명제법 시행으로 차명계좌 개설이 불가능한데도‘세금 절세를 위해 필요하니 매월 10만~300만원에 통장을 빌려달라’며 공공연히 대포통장 모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민과 노년층을 울리고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허무는 전자금융사기를 근절시키려면 대포통장부터 차단해야 한다. 대가성이 입증돼야만 명의제공자를 벌할 수 있는 솜방망이 법 규정부터 고쳐야 한다. 통장을 사고 파는 행위는 물론이고, 대여하는 행위, 대포통장 모집광고 행위까지도 엄중히 처벌해야 마땅하다. 이미 국회에서도 대가성과 무관하게 명의제공자를 벌하는 전자금융법 개정안을 비롯해 대포통장 의심계좌에 대해 금융거래 목적 확인서 발급을 의무화하는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금융당국과 국회는 조속히 관련 법들을 검토, 범죄의 통로가 된 대포통장 근절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