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는 자격증일 뿐…
작품 발표할 지면 적고 출판업계 불황 겹쳐 단행본 내려해도 최소 3년
전업작가 대신 다른 길로…
시 한 편 원고료 3만~15만원 방송사 진출·화물차 운전…
“새로운 사생아가 탄생했다....어머니(신문사)들은 그 사생아들이 아사(餓死)하건 동사(凍死)하건 일절 상관하지 않는다. 연년생으로 낳으면 그뿐이니까.”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견습환자’로 당선된 소설가 고(故) 최인호의 소감이다. 등단한 문청(文靑:문학청년)의 운명을 사생아에 비유한 그의 당선 일성은 47년이 지나도 유효하다. 사실 신춘문예의 화려함과 낭만은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을 설레게 한다. 소설가 백가흠씨는 “신춘문예! 멋있지 않나. 꼭 당선이 아니더라도 문학에 열병을 앓는 이들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선자에게 새해 벽두 그의 글로 신문을 수놓는 영광을 줄뿐이다. 등단 이후 활동은 오롯이 작가 능력에 달려 있다. 더군다나 작품을 발표할 지면은 적고, 출판업계가 불황이다 보니 원고료는 그야말로 쥐꼬리다. 그렇다고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다 보면 글쓰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아직도 신춘문예가 작가활동에 필요한 자격증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등단 문턱보다 더 높은 청탁의 문턱
매년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작가는 장르별로 10~20여명. 신문의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신인상으로 등단해도 전업작가로 자리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등단이란 바늘구멍을 뚫었지만 이후 수입원이 되는 원고청탁의 관문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턱없이 적다. 문예계간지의 경우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세계의문학 등 겨우 4개가 주류다. 한 출판계 인사는 “1년에 4번 나오는 계간지는 한 해 신인의 소설 작품을 3편 실을까 말까”라며 “단편 7편을 모아야 단행본을 낼 수 있는데 인정받은 신인이라도 3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등단해도 외부 원고청탁을 못 받거나 지쳐 사라지는 작가들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해 등단 작가 중 겨우 한 두 명만 살아 남고, 나머지는 신춘고아가 된다. 등단 작가마저 살아남기 힘든 이런 현실이고 보면, 등단을 못하면 작가로 자리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지명도가 낮은 기관, 단체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재 등단을 시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문예계간지 인사는 “종합일간지의 신춘문예나 주요 계간지 출신이 아니면 작가로서 인정을 받거나 글 청탁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독자들도 책을 잡기 전 어디서 등단한 작가인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 “글만 써서는 굶어 죽기 딱 좋겠더라”
등단 후 글을 쓸 기회도 적지만 쓴다고 해도 돈이 되는 건 아니다. 작품을 모아 책을 내는 것도 힘들고 출간 이후 상황도 가혹하긴 마찬가지다. 70여 편의 시를 모아 초판 1,000권을 찍어 봤자 시인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70만원에 불과하다. 일부 전업 작가들이 암암리에 한번에 수백 만원에서 1,000만원 대 수입이 가능한 대필을 하는 것도 이런 잔인한 현실 탓이다. 운전사 출신의 문인 이정훈(48) 시인은 화물트레일러 운전대를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연간 20편 정도 시를 문예지에 발표했으니 그는 다른 문인들처럼 신춘고아 신세는 면했다. 그러나 시 한 편 써봐야 3만~15만원의 원고료를 주거나 아예 입을 닦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2년 그의 작가 수입은 시를 써서 번 200만원과, 수필 원고료 100만원이 전부다. 함께 등단한 작가 중 시를 잘 쓰는 다른 문인들도 힘들어 하기는 매한가지다. 이씨는 “시 써서 먹고 살겠다는 사람 있으면 말려라”고 손사래를 쳤다. 2014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대학생 시인 김진규씨는 올 한 해 30편 가량 원고청탁을 받아 많은 시를 썼지만 애당초 전업작가의 길은 접었다. 그는 “시인이 직업이 되면 고정된 지면, 고정된 수입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힘들어질 것 같아 일찌감치 취업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했다. 글 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 직업을 찾던, 2013년 시로 등단한 김재현씨는 이달 서울방송(SBS)의 드라마 PD가 됐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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