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작가 초판본·편지 등 전시...국내 문학 사료도 1만점 모아
"작가 초심 오롯이 담긴 초판에 애착...근현대 자료 관리 소홀 안타까워"
24일 경기 파주시 세계문학박물관에서 만난 지경환(49) 관장은 “귀한 자료들일수록 세상에 나와 빛을 보고 알려질수록 더욱 가치를 갖는다”며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좋은 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계문학박물관은 2009년부터 5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12월 공식 개관을 앞두고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시범적으로 무료 개방하고 있다. 4,000여점에 달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 초판본 뿐 아니라 그들의 육성이 담긴 레코드 및 친필 서명과 편지 등 3,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국내 사료로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한국문학 초판본과 각종 희귀 잡지 등 다양한 작품과 소품도 1만점을 모아 놓고 있다. 최근에는 경매를 통해 희귀본으로 꼽히는 백석 시인의 ‘사슴’ 초판본이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화제가 됐다.
2009년 우연히 ‘데미안’ 초판본을 접한 것이 박물관 건립의 계기다. 데미안은 지 관장이 어려웠던 청소년 시절 함께 했던 책이어서 의미가 더했다. 지 관장은 “사업에만 집중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데미안 초판본을 받아 드는 순간 힘들었던 추억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떨렸다”고 털어놨다. 박물관 한쪽은 아예 공간을 할애해 헤르만 헤세의 작품과 사진, 소품, 육성 LP판들로 채운 ‘헤세의 방’을 만들었다. 추진 과정에서 시인이자 부인인 정경혜 부관장의 역할도 컸다.
‘초판’을 강조하는데 대해 지 관장은 “작가가 작품을 쓸 당시 초심을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판은 많이 인쇄하지 않기 때문에 수적 희귀성도 있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왜 썼는지 가장 근접거리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초판 이후 인쇄를 거듭할수록 표지도 바뀌고 내용과 삽화도 일부 바뀔 수 있다”며 “하지만 초판은 작가가 처음 펜을 들었을 때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한국 근ㆍ현대 문학 자료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지만 초판본, 창간호 등 각종 자료들이 제대로 보존돼 있는 경우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박물관은 ‘○○○ 문학박물관’이라는 이름을 걸었는데 막상 해당 작가의 작품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과 세계 문학사를 아우르는 대규모 문학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문학박물관은 400㎡ 정도로 1만7,000여점의 사료들을 전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전시관에 진열된 작품들은 1,500여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수장고 신세를 지고 있다. 그나마도 여타 박물관보다 빼곡히 전시한 것이 이 정도다. 지 관장은 최소 6만~13만㎡ 규모의 박물관을 구상 중이다. 또 한번 훑고 지나가는 박물관이 아닌, 새로운 전시물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해 ‘생존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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