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1,500원대 휘발유 첫 등장
원유값 하락 영향 1~3개월 내 국내 본격 반영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량 감축합의에 실패한 이튿날인 28일 수도권에선 휘발유를 리터당 1,500원대에 판매하는 주유소가 잇따라 등장했다.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유가 하락세에 따라 국내 기름값도 추가 하락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자정을 기해 경기 파주시와 고양시 등지의 주유소 5곳이 휘발유 판매 가격을 일제히 리터당 1,597원으로 내렸다. 리터당 1,500원대 주유소는 경북, 경남 지역에서 더러 있었지만, 수도권에 등장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서울 지역 주유소의 휘발유 최저 가격은 1,6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약 1,712원. 경기도는 약 1,717원이다. 오피넷은 다음주(11월 30일~12월 6일)에는 전국 약 1,706원, 경기도 약 1,710원으로 리터당 6, 7원씩 추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국내 휘발유 가격 하락은 아직 OPEC 감산합의 실패가 직접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국내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구입하는 휘발유 값은 중동 원유 시장이 아니라 싱가포르 석유제품 시장에 따라 매겨진다. 현재 싱가포르 시장에서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는 줄었는데, 중국과 인도가 대규모 정유공장을 증설하는 등 공급이 증가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르면 2주, 늦어도 3개월 정도면 OPEC의 영향이 국내 휘발유 가격에도 반영될 것으로 내다본다. OPEC이 원유를 감산하지 않으면 결국 아시아도 공급 과잉이 되고, 싱가포르 시장에서의 추가 가격 하락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2~3개월 이후 국내 휘발유 가격은 지금보다 많게는 200~300원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반대로 국내 기름값이 국제유가처럼 요동치진 못할 거란 예상도 설득력이 있다. 국내 기름값에서 국제유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40%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세금과 정유사의 마진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앞으로 2, 3주 동안 1,600원대까지는 무난하게 내려가겠지만, 그 이후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를 수입하는 국내 정유사들은 일정 분량의 원유를 비축해둘 의무가 있다. 지금처럼 싸지 않았을 때 사둔 원유가 쌓여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값이 떨어진 원유를 유조선에 실어오는 데도 한달 정도가 걸린다. 비축량을 소진하고 국내 싼 기름을 공급할 수 있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기름값이 하락하면 정유사는 위기다. 정유업계는 4분기 실적 악화를 예상하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해외지사를 통해 실시간 유가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하고 공정 운영 효율을 강화하는 등 경영 안정성 확보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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