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최고령 한전 후인정
재계약 불발 은퇴 기로에서 새 길..."노장이라 불려도 자랑스러워 후배들 나의 전성기 때보다 출중"
"영원한 라이벌 김세진·신진식 등 지도자 행보에 조급한 마음 들지만 팬들 앞에서의 현역 생활 대만족"
“감독님 걸음걸이만 봐도 다 안다.”
올해 마흔한 살의 후인정(한국전력)은 남녀 프로배구 사상 최고령 선수다. 많은 나이 덕분에 ‘후옹(翁)’이라고 불리는 그는 신영철(50) 한전 감독의 속도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통달’했다. 이번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은 후인정을 28일 경기 의왕시 한전 배구 훈련장에서 만났다. 그는 “배구 1, 2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훈련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걸 금방 알아차린다. 감독님이 화를 내기 전에 얼른 애들에게 열심히 하자고 눈치를 준다”며 웃었다.
배구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젊은 선수들 못지 않다. 후인정은 지난해 현대캐피탈과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갑작스럽게 은퇴를 해야만 했다. 그 때 신 감독이 “함께 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후인정은 “은퇴 후 SBS스포츠 해설위원 제의와 신 감독의 콜이 동시에 들어왔다. 배구만 해왔고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기에 신 감독의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어“내가 수원 후씨 시조인데 수원이 연고지인 한국전력에서 뛰게 된 것이 어떻게 보면 인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화교였던 후인정은 1994년 국가대표로 뛰기 위해 귀화했다. 당시 수원에 부모님이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수원 후씨가 됐다.
한전에서 함께 뛰고 있는 방신봉(39) 역시 V-리그 최고참이다. 후인정은“신봉이와 내가 최고참이다 보니 어렵거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후배들에게 얘기하기가 좀 그렇다”라며 “둘이 서로 의지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덧붙였다. 방신봉과 후인정은 현대캐피탈에서 함께 뛰기도 했다.
이미 7~8년전부터 ‘노장’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 그지만 코트에서는 여전히 ‘형’으로 통한다. 후인정은 “매스컴에서는 나를 노장이라고 부르지만 후배들은 날 노장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가끔 농담 삼아 어린 선수들에게는 ‘삼촌’이라 부르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선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노장이라 불리는 게 오히려 자랑스럽다. 아직도 코트에 서 있는 게 정말 좋고, 나나 신봉이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인정은 서재덕(25), 전광인(23) 등 젊은 토종 공격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고 털어놨다. 그는“광인이나 재덕이나 내 전성기와 비교해도 더 훌륭한 선수들이다”라면서도 “프로로 전향하면서 외국인 선수에 많이 가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 위주로 공격이 이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한전은 공격수들이 외국인 선수 못지 않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인정은 2005년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기 전부터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후인정은 전성기 시절 라이벌이었던 김세진(40) OK저축은행 감독과 신진식(39) 삼성화재 코치가 지도자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급한 마음도 든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코트가 더 좋다’고 말한다. 후인정은 “언제까지 코트에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남아있는 동안 최선 다할 것이다”라며 “나를 기억해주는 팬들에게 ‘배구를 정말 아끼는 선수’로 남고 싶다”고 전했다.
글ㆍ사진=이현주기자 memor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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