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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체시대라지만...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는 가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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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해체시대라지만...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는 가족의 의미

입력
2014.11.2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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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욱 지음

태학사ㆍ244쪽ㆍ1만5,000원

“가족이란 아무도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다.” 가족을 한마디로 정의한 말 중에 이처럼 잔인한 농담도 없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가 남긴 이 명언은 한 편으로 내다버리고 싶어도 늘 곁에 둘 수밖에 없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역설한다. 시대가 바뀌어 1인가구가 급속히 늘어난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개인의 삶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조교수이자 등단 시인인 저자는 한시(漢詩)에 나타난 옛 가족의 생생한 기록을 모은 이 책의 머리말에 “가족이란 원천적으로 화해와 불화를 함께 지닐 수밖에 없는 이란성 쌍둥이일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세상에 다시 없는 내 편 가족’이라는 제목 이면에는 가족의 의미가 급변하는 현실에서 “가족이 맡아주어야 할 훈도와 교육, 또는 자애까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한시를 통해 조선시대 가족의 모습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참신하다. 남아선호가 훨씬 심했던 그때 딸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출가란 곧 긴 이별과도 같았던 시대에 오누이는 어떻게 서로를 그리워했을까. 서얼은 적형(嫡兄)과 어떤 사이였을까. 저자는 적자와 서자, 처와 첩의 구별과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가부장제 가족의 모습을 한시에 나타난 표현들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아들을 편애하던 조선시대에도 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은 ‘딸 바보’ 아버지가 많았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 문신 신정은 어린 딸이 꽃을 꺾어 기쁘게 노는 것을 바라보며 이런 시를 지었다. “딸아이 처음으로 말 배우는데 / 꽃 꺾고선 그것을 즐거워하네 / 웃음 띠며 부모에게 물어보는 말 / 소녀의 얼굴이 꽃 같지 않아요?”

조선 후기 화가 윤덕희(1685~1776)의 '오누이'. 한시 중에는 오누이간의 이별을 그린 작품이 적지 않다.
조선 후기 화가 윤덕희(1685~1776)의 '오누이'. 한시 중에는 오누이간의 이별을 그린 작품이 적지 않다.

부모와 자식, 며느리와 시부모, 사위와 장인, 누이와 남동생, 할아버지와 손주 등 조선시대 가족의 모습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수많은 옛 시를 읽은 뒤 저자는 “표현에 인색하여 건조하고 무뚝뚝했을 것 같은 그들의 삶도 지금에 못지않게 따뜻하고 곰살궂었다”고 했다. 조선 중기 학자 김우급은 딸아이가 친정 오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을 애틋하게 시에 담았고, 다산 정약용은 아내와 함께 보낸 60년의 세월을 복사꽃에 비유하는 시를 쓴 직후 회혼(回婚)일에 눈을 감았다. 조선 후기 문신 권이진은 어린아이를 두고 죽은 맏며느리를 그리워하며 눈물의 시를 썼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가족이면서도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구성원인 첩과 서얼이다. 서얼을 대하는 아버지의 정이 적서를 구분하지 않고 형제애도 똑같았다는 점, 첩이나 서얼이 적자손을 저주하는 일도 없지 않았으나 적자와 서모의 관계가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저자는 서로 간의 위계가 철저히 자리 잡혀 있었기에 분란의 소지가 의외로 많지 않았던 것이라고 추론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가족도 바뀌었다지만 변치 않는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부제는 ‘세상에 다시없는 내 편’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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