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의 길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한때 지났던 길목이었으며, 많이 잃었던 길이었으므로. 소년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때 그 아쉬움도 찬란해서. 소년들은 나와 상관없는 길을 갈 것이지만 나는 소년들의 뒤에서 멀찌감치 서 있고만 싶다. 나는 그 시절에 분명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제천의 어느 도서관에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있었다. 토요일의 기차라는 동화였다. 내 어린 시절과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기차를 좋아했던 트레인 키드(train kid)였다고 고백하면서 동화를 읽어나갔다. 이상한 것이, 준비할 때는 몰랐는데 가서 보니 프로젝트에 비친 글씨도, 노트북에 비치는 글씨도 모두 흐릿하기만 했다. 글씨를 잘못 읽을까 조금 더듬거렸다.
그때 객석에서 내가 틀리게 읽는 글씨를 수정해주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웃었다. 어린 소년에게 나와서 나 대신 글씨들을 읽어달라고 했다. 불러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를 소년이 읽어 나가는데 평소 아껴 읽었던 글보다 더 뭉클했다. 어쩌나. 시야가 흐려왔다. 나는 저 소년만 했을 때 할머니를 만나러 혼자 기차를 타고 그곳 제천하고도 그 깊은 산골까지 길을 나서지 않았던가. 그날 이후로 나는 소년의 목소리가 잊혀지질 않았다.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최영남. 초등학교 6학년생. 나는 그 소년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중에 물었다. 꿈이 뭐냐고. 나는 그 소년이 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소년이 어른이 됐을 때는 이 지구상에 한 명의 군인도 없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그렇다.
제천 이야기를 하니 또 다른 소년이 떠오른다. 발달 장애를 가진 27살의 김성진씨. 그는 소년의 얼굴보다 더 소년의 얼굴을 가졌다. 우연한 기회에 그가 쓴 시를 한 편 읽었는데 나 같은 시인 따윈 꺼져버려라 하는 것 같았다. 제목은 가을 하늘이었다. “가을바람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닷빛처럼 내 마음 이뻐지네.” 충격을 받은 몇 줄 가운데 한 줄을 옮기자면 그렇다.
소년은 자기 마음이 이뻐지는 걸 어떻게 알게 됐을까. 게다가 이 가을, 자연 앞에서 이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해서 멍하니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무슨 마음이 그를 그토록 맑게 완성시켰을까. 바라보아도 영 풀리지 않는 것이 있었다. 세상은 마음이 이쁘기를, 마음이 예뻐지기를 허락하지 않건만 그럼에도 어딘가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는 소년의 내면이 살얼음 같아서였다. 물론 살얼음 같은 마음이 시를 내비친 것이겠지만 그런 표현을 영원히 쓸 수 없을 것 같은 나라는 시인을 제대로 고통스럽게 했다.
아직 한 소년이 남아 있다.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 소년은 특수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1학년 발달장애 소년이다. 소년은 그림을 그린다. 하루 눈 떠 있는 시간 동안 내내 그림을 그린다. 종이가 모자라고 색연필과 물감이 모자란 형편인 데다 부모까지 아이를 버리는 바람에 할머니 밑에서 혼자 성장하고 있다. 너무나 과하게도 많은 그림을 그려서 담임 교사는 시간을 정해준 뒤에 이면지 10장을 나눠주고 그 시간에만 그림을 그리게 한다. 학교 전체에서 나오는 이면지만으로는 모자란다. 그려 놓은 그림이 보잘것없는 배출 덩어리라면 그냥 그렇게 고개 끄덕일 텐데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렇게나 잘 그린다고 하니 참 사람 맘을 헤집어 놓는다.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듣는데 불쑥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실핏줄이 술렁거렸다. 한없이 뭔가에 허기지다 못해 기갈 들린 내 소년기의 한 때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이내 나는 질투를 누를 길이 없다. 송구한 말이지만 소년은 장애를 가졌으므로 세상에 눈치 볼 일도 없을 것이며 기준을 강요당할 필요도 없을 것이니 말이다. 더 그려라, 더 그려라, 그렇게 달려라,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으로 나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소년이었을 때 갖고 싶었던 것들을 다 가지려면 여전히 우리는 소년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여전히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특정한 시간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한번 삐끗한 생 이전으로 회귀할 수도 없다. 앉으면 소년으로 변한다는 마술의자를, 먹고 나면 소년으로 되돌려진다는 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
단지 내가 간절해 하는 것이 맑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고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그것인지 그 두근거림인지 모르겠지만 요 며칠 소년들의 이야기가 내 몸뚱이를 가마에서 뜨겁게 구워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병률 시인ㆍ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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